교육 언설

우리는 창의성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멋지다! 김샘! 2011. 10. 19. 14:58

 나의 퇴근길을 즐겁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최유라 조영남의 지금의 라디오시대'이다. 애청자의 사연들이 나의 삶이고 우리들의 삶이라 공감하는 부분이 참 많아서 때로는 눈물나도록 우습고, 때로는 눈물나도록 슬프기도 하다. 사연들 중에는 학교관련 내용과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내가 즐겨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연들 중에는 애청자들에게 오해를 심어주는 내용도 있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몇 주전에도 습관적으로 지금의 라디오 시대를 들으며 퇴근하고 있었다. 이날도 어김없이 초등학교 1학년 둔 선생님의 사연이 '웃음이 묻어 나는 편지'에서 소개되고 있었다. 내용은 엉뚱함이 있는 자기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겪는 좌충우돌의 성장스토리였다. 그런데 소개되는 내용은 엉뚱함이었는데 사연을 보낸 그 분은 창의성이 있는 자기 아이를 학교가 제대로 받아주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놀이동산에서 줄을 서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와 같은 질문에 다른 아이들은 '다쳐요!, 질서를 안지키면 서로 불편해요!'와 같이 교과서적으로 대답을 한 반면, 자기 아이는 '할머니(?)에게 엉덩이를 맞아요!' 등으로 대답을 해서 야단을 맞거나 시험에서는 틀리게 채점이 되어 손해를 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분은 학교가 아직 자기 아이와 같은 창의성이 풍부한 아이들을 받아줄 준비가 안되어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10여년전 학교에 창의성 교육 바람이 일기 시작될 때 거의 모든 강사들이 예를 드는 것이 '곤충를 세 부분으로 나누면 어떻게 될까요?' 이다. 정답은 '머리, 가슴, 배이다.' 그러나 강사는 '죽는다'로 대답하는 아이가 창의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는 이와 같은 아이를 길러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과연 '죽는다'라고 대답하는 아이가 창의성이 있을까?
 창의성은 엉뚱함과 장난끼와 인기성 발언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창의성에 대한 공통적인 정의는 '생산적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생각을 포함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곤충을 세부분으로 자르면 '죽는다'와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할머니에게 혼난다.'로 대답하는 아이는 엉뚱한 것이지 창의적인 것이 아니다. '죽는다.'로 대답한 아이는 질문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독해력이 떨어지는 아이이고, '할머니에게 혼난다.'로 대답한 아이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아이이다. 전자의 아이에게 왜 '죽는다'라고 대답했니?, 후자의 경우에는 '왜 할머니에게 혼나니?라고 물으면 금방 제대로 된 답이 나온다.
 그리고 우려스러운 것은 이와 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의미를 단순히 대중의 보편적인 논리에 접목이 되면 아주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연을 접한 국민들은 창의성을 어떻게 생각할까? 맞다고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 맞장구를 치는 사람은 학교가 창의성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인식될 것이다. 아울러 자기 아이의 엉뚱함을 창의성으로 둔갑시켜 특별 대우를 해달라거나 교사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왜 선생님은 아이의 창의적인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냐고 할 것이다. 심지어 선생님의 자격까지 거론할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학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병원, 법원, 시청, 은행, 경찰서, 증권사 등의 민원제기나 분쟁의 원인 중 상당수가 전문적인 내용을 대중적으로 해석한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건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민원을 제기한 분이나 분쟁을 야기한 분의 의견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범위에서 마무리를 짓고 있다. 심지어 같은 직장에 근무를 하면서도 전문적인 영역에 대한 해석이 달라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전문가이다. 즉, 학생들에게 학습을 일으키는 전문가이다. 전문가는 전문지식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어야 되지만, 대중성에 편성한 인기영합적인 말과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언론의 힘은 대단하다. 그 대단한 힘을 잘못 사용하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음을 알고, 전문성이 있는 부분을 다룰때에는 대중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각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학교는 엉뚱함을 길러주는 곳이 아니라 '새롭고 생산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생각을 포함한 능력'을 길러주는 곳이다. 이 창의성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을 학교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쉽고 편한 것이 있겠는가? 창의성 또한 쉽고 편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엉뚱함'과 '창의성'을 구분하고, 창의성은 교육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더 나아가 자기의 아이나 주변의 아이의 엉뚱함을 창의성으로 둔갑시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