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의 휴지
지난 토요일에 가족과 '완득이'를 보러 갔다. 작은 아들의 학예회가 있던 날이기도 하고, 같이 외식도 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해서 겸사겸사 편안하게 토요일 오후를 즐기고자 했다. 아이들에게 시간계획을 짜 보라고 하니, 오후에 자기 친구들과 야구를 한 후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저녁 메뉴도 정하라고 하니 친구들과 야구를 한 후 알려 주겠단다.
야구를 하는 사이 나는 편안하게 거실의 소파에 숫사자의 위용으로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런데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는데도 아이들이 오지 않아 전화를 거니 이제 막 마쳤단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뭘 먹을 것이냐고 다그치니 큰아들이 곱창을 먹고 싶단다. 둘째 아들은 싫단다. 둘이서 협의해서 결정하라고 하니 한참 뒤에 곱창으로 결정했단다.
곱창집에 들어가서 곱창을 시켜놓고 있는데 소주가 절로 생각난다. 주인 아주머니도 술은 뭘로 할거냐고 물어본다. 나는 음료수 2병만 달라고 했다. 영화관에서 술냄새 풍기기도 싫었고, 같이 먹을 사람도 없고, 발동 걸리면 끊기도 힘들고, 앞에 앉아 있는 아내도 반기지 않을 것 같고--- ---.
시간에 지남에 따라 화로의 열기가 땀 많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물수건으로 닦으려고 하니 비비크림을 바른 것이 지워질 것 같아서 휴지로 이마를 가볍게 눌렀다. 계산을 하고 극장으로 걸어가는데 자꾸 사람들이 쳐다본다. 영화보기 전에 화장실에 들러서 거울을 보았는데 세상에 이마에 땀 뭍은 휴지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그것도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져 지저분하게--- ---.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쳐다 본 것이구나!
곱창집에서 계산할 때 아주머니도 보았을 것이고, 아내와 두 아들도 보았을텐데 왜 말을 안했지? 아내는 못 봤단다. 10여분을 같이 걸어 왔는데 내 얼굴을 한번도 못봤단 말인지? 할말도 없고, 부끄럽기도 하고, 의심은 가지만 물증은 없고.
그런데 이 와중에 예전의 나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막 부끄러워서 짜증도 내고, 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등등 쓸데 없는 걱정을 많이 했다. 심지어 그 장소에 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부끄러울 뿐 별 감정이 없다. 오히려 내 모습을 본 사람들에게 이야깃 거리를 제공했다는 희한한 희열을 느낀다.
나이에서 오는 여유인지? 아니면 내 정신세계가 희한해진건지?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