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9일
늘 그렇듯, 연휴의 시작의 설렜고 연휴의 끝은 아쉬웠다.
그나마, 출근길에 하얗게 가득 핀 아까시꽃, 이팝나무 꽃, 찔레꽃이 아쉬운 출근길을 위로했다.
연휴를 편안하게 보내는 동안 논 군데군데에 못자리가 생겼고 바지런하고 호기심 많은 농부의 논은 벌써 모내기가 끝났다.
못자리 물을 대기 위해 인근 저수지에서 흘려보내는 물 위로 하얀 아까시꽃이 별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세월도 참 빠르다.
어린이였던 나는 젊은이를 지나 늙은이가 되어가고, 두 아들은 어린이를 지나 젊은이가 되었다.
어버이날 아침에 어머니 방 청소하는 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니는 정년퇴직하고 조용한 절에 들어가서 책만 보고 공부만 해라.”
“뜬금없이 무슨 말인데?”
“둘째도 조금 있다가 제대할끼고, 큰 아도 오늘 본깨네 걱정 안 해도 되것다.”
“둘이 장가보내야 될 꺼다 아이가?”
“그거는 인자 저것들이 하것지.”
“요새는 우리와 달라서 저것들이 돈 벌어서 결혼 못 한다.”
“그래도 저것들이 벌어서 해야지. 니가 무슨 돈이 있노?”
“나도 그럴라고.”
“그래도 이서몬 좀 도와줘라. 니도 힘들더라 아이가.”
청소를 다 마치고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뒷말은 빼고 앞말을 거들었다.
“어디 책보며 글 쓰고 청소하며 지낼 조용한 절간 있는지 알아보소. 어머니가 좋은 이야기 했네.”
교사한 것을 후회하진 않지만,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교육대학교에 갔다. 어쩌면 부모님의 뜻을 받든 게 아니라 게으른 나를 합리화한 게 옳을 것 같다. 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 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게 공부였더라도.
그래서 두 아들이 자라는 동안 내가 바라는 것을 절대 말하지 않았다. 내가 말한 것이 두 아들의 삶을 한정하거나 핑곗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지금도 제 갈 길을 찾는, 찾아가는 두 아들을 응원만 한다.
큰아들이 집에 온 김에 친한 친구 한 명과 고등학교 시절 엄한 선생님을 만난다길래, 그 선생님의 교육철학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의외라고 했더니, 교육철학은 동의할 수 없지만, 그 선생님의 진정성을 이젠 알 것 같다고 했다. 자주 찾아뵈라고 했다.
나날이 기운 빠지는 어머니를 슬쩍슬쩍 바라보노라면 나답지 않게 마음에 눈물 한 방울 흐른다. 마음 한쪽에 이런 마음이 자리 잡는 건 세월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은 보답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