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2년 6월 3일

멋지다! 김샘! 2022. 6. 3. 16:08

진 놈을 패기는 참 쉽다.
팰만한 이유도 수천 가지다.

지금 그놈을 패는 이유가 회복을 위한 치유인가?
회복 불능의 숨통 끊기인가?

건전한 비판자라는 허울로 진 그놈을 패는 게 회복의 묘약인가?
진 놈에게 통할 묘약이었다면 지기 전에 도대체 뭐했나?

그놈이 수렁으로 나아갈 때, 내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멀찍이 팔짱 끼고 끼리끼리 험담하며 나락으로 등 떠미는 오발탄을 연신 쏘아 올리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그놈의 가슴팍에 올라타 주먹질을 해대는 게 회복을 위한 건전한 비판자가 할 짓인가?

깨끗한 솜에 소독약 가득 발라 두드려도 깊은 상처의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고, 쉬이 새살이 차서 아물지 못하는데.
이리저리 버둥대며 묻은 보기 싫은 찌꺼기를 씻어내겠다며 바가지로 물을 연신 뿌려대면 붉은 속살의 상처 속에 숨겨진 하얀 뼈마저 오염된다.

큰 상처 잘 치유해서 흉터 남기지 않으려면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살펴야 한다.
우리의 정체성을 시대의 요구에 잘 반영하여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우리의 정체성으로 우리가 잘하는 것으로 회복해야 한다.
이제 겨우 몇 발짝 앞서가는 놈 따라잡겠다며 그놈이 하는 짓 어설프게 따라 하면 항상 그놈 뒤만 따라야 한다.

난무하는 비판을 비판한다.

한 가지 더, 민주주의를 지키는 경비견을 제도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분명한 위기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