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2일
거의 한 달 만에 일기 쓴다.
11월 14일부터 왼쪽 눈이 이상하여 의기소침하고 우울한 11월 15일 일기를 쓴 후 병 조퇴를 내고 동네 안과에 갔더니 망막박리가 심각하게 진행되었으니 적어주는 소견서 가지고 바로 대학병원 안과로 가라고 했다. 내일 가지 말고 지금 당장 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대학병원 안과에 소견서를 보여줬더니 일사천리로 다양한 검사기계로 이런저런 검사를 꽤 오랫동안 했다. 검사 결과를 본 의사가 망막박리가 심각하게 진행한 상태라서 수술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머리가 흔들리는 심한 운동을 했는지, 사고로 다쳤는지 여러 번 물었다.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더니 나처럼 그냥 망막박리가 일어나는 경우는 의학적으로 아직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자책하지 마라고 했다. 17일 금요일 아침 일찍 수술 날짜를 잡으며, 수술 시간에 비해 까다로워 전신 마치가 불가피하고, 수술 후에도 다시 망막이 박리되는 재발률이 30%라고 했다. 재발을 줄이는 방법을 물었더니 박리의 원인을 모르니 막연하게 안정을 취하고 머리가 흔들리는 일을 하지 않는 정도라고 했다. 수술 후에도 시력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고 달리진 시력으로 기존 안경이 많이 불편할 건데 시력이 확정될 때까지는 불편을 감수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11월 16일에 수술을 위한 코로나19 검사부터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코로나19 음성과 수술 가능하다는 의사 소견으로 오후에 입원한 후 수술 준비를 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11월 17일 일찍 수술하기로 했는데 오후 1시로 바뀌었다. 수술 전과 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수술 침대에 실려가면서 다른 이의 시선을 마주하기 싫어서 눈을 감았다. 수술 대기실에 있는데 한 무리의 의사가 달려오더니 위로가 되지 않는 이런저런 말을 하며 정신없이 침대를 수술실로 끌고 갔다. 주름 잡힌 큰 관을 들이밀더니 흡입하라고 해서 숨을 두 번 들이킨 이후는 기억이 없다. 웅장하고 길쭉한 바위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주고받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의사들이 온몸을 두드리며 깨우더니 숨을 크게 쉬라고 다그쳤다.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꿈을 꾸었다고 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입원실에 다다라서야 내가 수술을 한 걸 깨달았다. 6시간 동안 엎드려 누워 큰 숨을 쉬며 폐에 남아있는 마취가스를 밀어내고도 눈 회복을 위해 계속 엎드려 있어란다. 3일 후에 퇴원을 했는데 집에서도 엎드리거나 모로 누운 자세로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망막에 잘 붙어라고 눈에 주입한 가스가 다 빠지는 14일 동안 엎드리기와 모로 있기를 번갈아 했다. 잠잘 때도. 망막이 다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제쳐두고라도 어깨가 무척 아팠다.
내 상태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성화에 절대 안정이 힘들었다. 동생과 아내가 그러려니 하라고 했지만 아프면 더 예민한 게 사람인데 어디 그게 쉬울 리가 있나. 다행히 진료를 할 때마다 망막은 잘 붙어있다며 의사가 희망을 얘기했다. 그래도 모르는 일이 생길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조심하는 방법은 모른다고 하면서.
회복 중에 독감에 걸려서 또 한 번 시련에 부딪혔다. 정말 아팠다.
독감 회복 중에 아내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나도 검사했는데 다행히 음성이었고 지금도 증세가 없다. 왜곡이 심한 눈으로, 아직 독감의 여운이 있는 몸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코로나19 고위험군인 어머니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게 하려고 '엄마는 코로나19에 걸려서 입원하면 퇴원하지 못할 수도 있다.'-나에게 이런 말 들으려 나를 위해 희생한 삶이 아닌데 - 엄포로 고집을 꺾어가며 수발한다. 아내는 방에 격리된 채 나와 어머니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도록 무척 애쓴다. 어제는 어머니 밥상을 차리며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고 이런 기회를 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어제 오후에 오늘 운전하여 출근하려고 눈 상태를 점검하는 산책을 조심스럽게 했는데, 형상의 왜곡이 있고 거리 감각이 무디었다. 운전하여 출근하는 방법이 유일하고 자동차의 첨단 기능 활용과 늘 다녔던 익숙한 감각이면 가능할 것 같았다.
수술 후 여러 가지로 상황이 겹쳐서 지나치게 움츠렸다. 많이 보는 것과 망막 박리와는 인과관계가 적어서 안정의 취하며 일상을 회복하라는 의사의 소견도 있었고, 모든 상황을 수용하는 것만이 가장 빠른 회복이고 왜곡된 비정상의 시력으로 정상 생활을 미룰 수 없어서 오늘부터 글을 조금씩 느리게 쓰고 책도 조금씩 쉬어가며 읽는다. 이렇게 정리하니 별것도 아닌 걸로 주눅 든 것 같고, 병원 진료 잘 받으며 눈 상태대로 일상을 조정하며 흘러갈 것이다.
고마운 이들이 있다.
내 상태를 이해하고 힘껏 도와준 학교 사람들, 잊지 않고 전화로 꼬박꼬박 위로하는 친구-오늘 아침에도 전화가 왔다. 소견서를 잘 써 준 동네 안과 의사다-덕분에 검사와 수술을 빨리 할 수 있었다.
반면에 확인한 클리세가 있다.
사람들의 남의 불행을 알고 싶을 뿐 공감하지 않는다.
불행은 한꺼번에 밀려온다.
내가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만큼 그 사람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미 없는 삶은 없다.
이성에 기반한 AI라면 이런 클리세가 클리세로만 유통되겠지만 감정이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에겐 클리세의 위로와 낙담으로 번성할 것이다.
더 확고해졌다.
소신을 지키는 삶이 그래도 후회 없는 삶이다.
삶의 목표를 정하지 않는다.
지금을 소중하게, 나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위하자.
오롯이 내 삶을 살자.
눈이 불편하다고 교직원 삶에 영향을 끼치는 교감 일을 안 할 수는 없다. 문서 작업은 교직원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서 부담이 적지만 조정과 조절은 성심껏 한다. 진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