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고 변화
경력이 적었을 적에 학교에 가진 불만 중의 하나가 학예회나 운동회를 학생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방향으로 하면 별다른 연습을 하지 않아도 될텐데, 왜?, 외부에 보여주기 위해서 아까운 수업시간에 연습을 하는냐는 것이었다.
어느날 교장선생님이 우리 학교에서의 학예회나 운동회는 학부모님을 비롯한 외부인에게 선생님들의 지도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수업시간의 역할극이나 장기자랑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다.
작은 아들의 학예회를 간 적이 있었다. 실망이었다. 공연수준이 학부모들을 초청하기에는 낮았다. 아들의 학교는 학예회의 목적을 학생들이 즐기고 교사들에게 부담을 줄이는 방향인 것 같았다. 그러나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학교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교육활동을 하다보면 종종 '왜'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경우이다. 남들이 하니까? 다른 학교에서 하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으니까? 당연히 비슷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문화가족 캠프와 아버지와 아들 캠프를 실시하였다. 다문화 캠프를 운영으로 느낀 것이 다문화 캠프의 방향이 잘못된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다문화 교육이 우리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이루진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문화 가족안에 있었다. 올바른 부부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고, 자녀들의 부모 공경 의식이 부족했다.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예사로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더 심각한 것은 아이들이었다. 부모님을 부끄러워 하는 것 같았고, 민망할 정도로 부모님에게 예의없이 버릇없이 행동하였다.
'왜?' 다문화 캠프를 하는지를 생각한다면 다문화 교육의 방향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캠프에서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들에게 무조건 잘해 주는 것이 올바른 아버지 상인지로 착각하고 있었다.
교육기관은 금연구역임에도 아들과 손잡고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 심지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 아들이 위험한 행동을 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해도, 기본적인 규칙을 어겨도 관대한 아버지, 교육활동을 할 때 뒤에서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버지.
가정에서 아이들은 부모님의 언행을 보고 성장한다. 많은 대화만 한다고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규칙을 지키는 모범적인 아버지, 어머니를 존중하는 아버지, 사회에 봉사하는 아버지,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버지들의 자녀는 저절로 바른 성장과 발전을 한다.
캠프의 내용 중 정여창 고택 방문이 있었다. 문화해설사가 정여창 고택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한 무더기의 아버지가 뒤에서 귀찮은 인상으로 그늘에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옆의 아이도 축 늘어져 있다. 그러나 다른 무리는 해설사 바로 앞에서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있다. 궁금한 것은 질문도 한다. 물론 동행한 아이도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잔뜻 세우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 캠프의 취지는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행복한 부자관계 정립이다. 단순한 놀이 위주의 캠프가 아닌 것이다.
'왜?' 라는 의문을 가졌다면 아버지들의 태도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캠프의 방향도 달라졌을 것이다.
'왜?'는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물음이다.
'왜?'에 의한 결과는 당연히 다음 교육활동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왜?'라는 물음만 던지고 현실적인 장벽으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불만을 토로하는 인습처럼 내려오는 교육활동이 얼마나 많은가?
한꺼번에 다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관리자와 교사, 학부모의 자리에서 작은 실천의지만 있다면 '왜?'라고 던진 질문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