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6일
교감 경력이 꽤 있는 다섯 명의 남자 교감이 개학을 앞두고 1박 2일 계획으로 만났다. 다섯 명은 교육대학교 같은 과를 졸업하여 나름대로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다. 방학을 이용하여 일 년에 두어 번 만나 정보를 공유하며 토닥거렸다. 그 덕과 운으로 순서는 다르지만 교감이 되었다. 교감을 한 이후로는 나누는 이야기가 학생 교육보다는 인사, 복무, 행정이 주가 되었다.
오늘은, 만나서 펜션 근처에 있는 소나무 길을 가볍게 걸은 후에 바닷가 친구가 가져온 회로 술잔을 여러 번 나눠 마시며 교장 연수 대상자와 교장 발령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장 발령을 기다리는 친구와 교장 자격 연수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친구 둘이 있어서 누구 할 것 없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교감 경력이 같은 데도 근무하는 교육지원청의 규모와 사정에 따라 근무 평정을 받는 년도가 많이 다르니, 어떤 교감은 경력에 비해 정말 일찍 교장하고 어떤 교감은 연수 기수가 자기보다 한참 뒤인 교감보다 한참 뒤에 교장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불합리하다고 했다.
"교육지원청마다 규정이 다 달라서 그런 게 아니야?"
"교육지원청마다 다른 것도 문제고, 교육장이나 교육과장이 바뀔 때마다 규정이 달라지는 것도 문제다."
"그런 맛에 교육장 하고 과장을 하는 것 아니겠나?"
"그걸 뭐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요즘은 승진 숫자가 확 줄어들어서 지역에 따라 순서 차이가 너무 커서 나오는 불만 아니겠어?"
"그런 이유로 교육장과 과장도 고민을 엄청할걸."
"다른 시, 도처럼 우리도 도 교육청에서 교장 자격연수 대상자 선정하면 좀 낫지 않을까?"
"안 그래도 할 일이 많다며 교육지원청으로 일을 밀어내고 있는 판국에 잘해야 본전인 인사 업무를 떠안을까?"
"하기야 나래도 안 하겠다."
"너는 언제쯤 연수받을 수 있겠어?"
"아이, 몰라! 감감하다. 경력으로 따지면 내가 하고도 남았는데 교감이 늦게 된 선배들이 퇴임이 얼마 안 남았다며 교육지원청을 들락거리니 자꾸 뒤처진다."
"너도 한번 찾아가 봐야 되는 것 아니야?"
"아직 그러긴 싫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내 교감하려고 근평 때문에 속 썩은 것 다 알잖아. 그 속 또 썩기 싫다 자기들도 양심이 있으면 적당히 하겠지."
김 교감은 근평을 받으려 교사들이 기피하는 학교에서 교무를 했다. 그런 사정을 동료 교사를 비롯한 교감과 교장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근무평정 작업을 할 즈음에 교감이 동료평가가 좋지 않아서 근무평정 '최고 수'를 줄 수 없겠다고 했다. 어이가 없어서 '동료평가가 좋지 않은 것은 교장과 교감의 뜻을 충실히 따른 결과이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교사가 학교를 놀이터로 생각하는데 그런 교사들에게 교무가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며 이것저것을 하게 하니 싫어하는 게 당연 것이 아니냐며, 그러면서도 그런 교사들이 성과상여금에 대한 욕심은 버릴 수 없었으니, 그런 동료 교사가 교무에게 좋은 평가를 할 리 있었겠냐'며 항변했다.
교감은 자기는 어쩔 수 없다며 교장에게 사정해 보라고 했다.
며칠 뒤에 교장실로 가서 분한 마음 꾹꾹 누르며 근평을 달라고 했다. 교장은 동료평가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동료평가와 상관없이 교감과 교장이 60% 근평 결정권을 가졌는데, 동료평가 운운하는 것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꿍꿍이를 시원하게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긴 들었지만 직접 당하고 보니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띵했다. 정중하게 인사하고 물러났다.
다시 며칠 뒤 교장실로 갔다. 근평 '최고 수'를 안 주실 거면 더 이상 교무로서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교장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다. 근평이 교육지원청에 나간 뒤 정보공개 청구로 근평 확인하겠다고 했다. '최고 수'가 아니면 왜 아닌 지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최고 수'를 받았고, 그 해에 교감 자격연수 대상자가 되어서 학교를 옮겼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굴욕감과 민원을 제기할 경우에 닥칠 비난을 헤쳐나갈 두려움을 잊을 수 없다.
"다들 학교 근평은 별 탈 없이 잘 처리했어?"
"아이고 말도 하지 마라! 별 요상한 선생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흐흐흐, 재밌겠는데 좀 들어 보자."
"아니, 남들보다 학생을 더 잘 가르쳤나? 그렇다고 업무가 많았나? 있는 업무를 제대로 하기나 했나? 제대로 한 건 틈나는 대로 생색만 내더니 승진 점수가 제일 높으니 '최고 수' 내놓으라는 거야!"
"요새도 그런 선생이 있어?"
"어떻게 그런 선생이 교무를 했어?"
"교무를 하기는 뭘 해?"
"아니 그럼, 교무 근평은 어떡하고?"
"글쎄, 교무가 교감 발령을 기다리고 있고 근평이 필요 없는 상황을 알고는 그런 지랄을 하는 거지?"
"그럼 처음부터 교무를 시키지 왜?"
"그런 위인이나 되었으면 교무 시켰지! 교무 하면 학교 분위기를 망칠 판인데······"
"그래서 근평 줬어?"
"몰라 짜증 난다. 내가 교장도 아니고."
"뭔 일이 단단히 꼬인 모양인데 이야기 마저 해봐라."
"아니 글쎄, 교장하고 정말 심사숙고하여 주긴 줬지? 한 가지 약속을 받은 후에."
"잘했거만!"
"근평이 나간 뒤에 그 약속마저도 어겼으니 문제지."
" 올해 네 학교 재밌겠는데, 내년 2월도 재밌겠는데"
"그래, 실컷 놀려라."
다섯 명은 다음 날 호수가 밝아 올 때까지 잘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