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에 맞춰 한 번은 소회를 남기고 싶었다.
아침 라디오 뉴스에서 교사 10명 중 8명이 교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최근 조사를 인용하며 날로 늘어나는 교권 침해와 학부모 민원을 원인으로 꼽았다.
덧붙이면 단순히 늘어만 난 게 아니라 교권 침해, 학교폭력, 아동학대가 얽혀서 그 책임을 교원에게 미루려는 교활함이 더해졌다.
교사로 처음 맞이한 스승의 날은 반갑지 않은 풍경이었다.
학생 조회에서 엎드려 절 받기로 카네이션꽃을 가슴에 달았고, 학교에서 강요한 학부모 주최 교직원 위로 회식에서 학부모의 노골적인 불만을 느꼈다. 그리고 내 책상에는 여러 선물이 포개졌다.
지금 생각하면 스승의 날에는 으레 카네이션꽃과 정성 어린(?) 작은 선물 정도는 괜찮다는 의식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해서 전면 거부하지 못하고 양말이면 족하다는 위선적인 행동을 했다. 그리곤 스승의 날만 다가오면 언론은 교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며 나무랐다.
시간이 좀 지나서 철이 들었는지 선물 전면 건부를 선언했다. 그래도 자기 정성을 담아 가져오는 아이, 교묘하게 자취방 문 앞에 내가 받을 수밖에 없는 현물을 갖다 놓은 학부모를 내치지 못했다. 내 아이에게 필요한 책을 선물한 부모에게 그 책의 가격보다 훨씬 적은 가격의 책으로 보답하며 거부하지 못하는 속물의 신세를 한탄하며 위안했다.
김영란법이 생겼다. 모든 걸 거부할 명목이 생겨서 좋았다. 한편으론 야속도 했다. 공무원의 부패 원인과 비중을 따지면 교원은 새발의 피다. 국가권익위원회는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 김영란법 적용 예시를 교원의 행위를 상상하여 설명했다. 국민에게 마치 교원이 그렇게 부패한 집단이라는 신호를 주었다. 언론은 그런 건수가 하나라도 있으면 보도하여 국민권익위원회의 상상의 사례를 실제인 것처럼 여기게 했다.
학교는 자축하는 스승의 날 행사조차 폐지하며 학교장재량휴업일로 운영하는 학교가 늘어났다. 이것도 스승의 날은 공휴일도 아닌데 학생 내팽개친다는 여론과 우리의 자정 노력으로 지금은 오늘 우리 학교처럼 여느 날과 다름없이 보낸다.
현재처럼 학교의 모든 문제를 법령으로 해결하려는 분위기면 교원 권위는 일일이 법적 대응으로 회복해야 한다. 생활지도법도 정당과 부당을 다투어야 하는 법이다. 그게 능사가 아니다. 차라리 모든 걸 법령으로 해결하자 하면, 학교 전담기구나 위원회가 아닌 경찰청이나 검찰청 아래에 신고와 해결 기구를 별도로 신설하여,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조사가 아닌 수사하여 법으로 책임을 묻고, 그 결과로 민사 배상까지 하도록 하자. 끝장을 봐서 교육을 사법화하자. 그런데 이게 교육자가 할 소리는 아니지 않은가.
그것보다 교원의 권위를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풍토와 문화를 만들어서 교육 본질을 회복하자는 주장이 나아갈 방향이고 그렇게 되어야만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걸 교원이 할 수 없지 않은가. 정치권과 언론은 교권 침해받는 교원을 측은하게만 보지 말고 우리의 정체성을 흔드는 중대한 일탈 행위로 간주하여 교원의 권위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모습을 일관성 있게 보여라. 틈나는 대로.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경우가 없는, 있다 하더라도 가물에 콩 나듯 수업하는 교감이 되어서는 스승의 날에 스승으로 즐길 교감의 역할은, 교사 때 가졌던, 교사가 하면 안 되는 일은 교사가 하지 않도록, 교사의 뛰어난 재능은 최대한 학생을 위해 사용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자랑할 순 없지만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다. 뛰어난 교사들이 모인 준벽지의 작은 학교이지만 교감인 내가 마냥 평온하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학교를 옮겨야 하는 내 자리를 탐내는 교감들이 있다. 하나같이 준벽지 학교는 우수한 교사들이 모이니 교감이 할 일을 안 해도 될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다. 그들을 잘 부리기만 될 것이라는 춘몽을 꾸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 그렇게 하다가는 아주 못된 교감이라는 평만 얻을 것이다.
우리 학교만의 특색을 살려 경남형 혁신학교인 행복학교를 9년째 운영하며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의 신뢰와 만족도를 높였다. 학교 공동체의 상생의 소통과 학생을 향한 교사의 열정과 전문성으로 가능했다. 광역 학구로 조정된 이후 학부모의 입소문으로 전학 오는 학생이 늘고 있다. 이런 우리 학교를 잘 유지하며 성장시킬 자신이 있는지를 성찰한 교감이 후임이면 좋겠다. 주제넘은 욕심이지만.
또 주제넘지만, 교감이나 교장이 스승의 날에 같이 즐기는 스승이 되려면 화려했던 과거와 현재의 치적으로 출세, 명예, 권세를 탐하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스승의 날 맞이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소회를 남기고자 했는데 주제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