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3년 5월 31일

멋지다! 김샘! 2023. 5. 31. 20:27

소설 '제주 기행'1

여보, 여행가요.
제주도로 여행가요.
내사 학습연구년제이니 상관없다마는 당신은 학교 어찌하고?

연휴 마지막 날 돌아오는 비행기가 없는데 그다음 날 연가 내고 다녀오면 될 것 같아요.
이때까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잖아요? 갑자기 왜 그래요?

그냥 그러고 싶어요, 책을 읽어도 머리에 남지 않고 글을 써도 집중할 수 없고 그냥 짜증이 온몸에 가득해요. 이러다가 누군가를 다치게 하겠고 그로 인해 나도 다칠 것 같아요.
그럼, 연휴에 맞추어 가까운 데로 다녀옵시다.
아니, 그냥 제주도로 가요.
제주도와 나 모르는 인연이 있어요? 지금까지 다녀온 걸로는 성에 안 차요?
한두 번도 아니고, 왜 무시로 제주도 가자고 그래요.
그냥 가끔 갑자기 제주도의 땅 여기저기를 밟고 싶어요. 굳이 따지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육이오 전쟁 때 제주도 포로수용소에 억울하게 수용당했다가 탈출하면서 무릎에 박힌 총알에 불구로 사시다가 돌아가셨지.
그것은 들어서 이미 알고 있고, 다른 인연은 없소?
없소!
대신 이번에는 내가 하자는 대로 제주도를 돌아봅시다.
알았어요.

김해공항으로 가지 않고 여수공항으로 가요?

여수공항이 주차하기도 좋고 편한데, 제주도 가는 비행기도 제법 있어서 이번에 이용해 보고 좋으면 다음에도 이용하려고, 거리가 비슷하니까.
고속도로가 이차선이라 아까부터 좀 불안해요. 경기가 안 좋다고 하더니 대형트럭이 많은 걸로 봐서는 공장은 잘 돌아가나 봐. 아이고야! 아이 씨!
왜 그래?
아니!, 큰 트럭이 옆으로 지나가니까 마음이 철렁철렁하다니까.
그래도 차 안 막혀서 좋은데.

주차장도 널널하고 탑승수속도 여유로워서 좋은데.
편의시설은 뭐가 없네.
국내 여행하면서 편의시설 뭐 따질 게 있나. 이번에는 급하게 예약한다고 할 수 없이 대형 항공사 표를 예매했지만, 다음에는 저가 항공사로 하면 더 저렴할 것 같은데. 일단 나는 만족.
태희 조카가 제주 공항 주차장에 차 갖다 놓았으니까 그걸 타고 집에 오래.
차 키를 그대로 두고 세워뒀다는 말이야?
요즘은 차 키 안에 두고 자동차회사 앱으로 문 잠그고 열고 다 할 수 있어서, 차 앞에서 전화하면 문 열어준대요. 우리 차도 그 기능이 있잖아.
그렇다고 하던데 그걸 믿을 수 있나?
그러니까 당신은 옛날 사람이야.

좌회전하려면 일차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양보 좀 안 해 주나?
일단 이차선에서 기다리다 좌회전 신호가 떨어지면 눈치껏 들어가서는 비상등 켜서 미안하다고 해야겠다.
되게 빵빵거리네, 비상등 켜서 미안하다고 했으면 좀 이해해 줘야지.
제주 택시 유명하다던데 그대로네.
태희 아직 퇴근 전이라 우리 보고 집에서 기다리래.
저녁은 뭘 먹을 것인지 물어봤어?
응, 그런데 자꾸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을 묻길래 돼지고기 먹자고 했는데, 오면 한 번 더 물어보지 뭐.

여보! 태희 왔어.
나도 너처럼 잘 지내, 잘 지내니까 너 보러도 왔지. 조민이는 육지에 있는 언니한테 갔다면서, 모레 저녁에 오면 그때 맛있는 것 먹기로 하고 오늘은 돼지고기 먹으러 가자.
아무리 맛있는 식당이라도 줄 서서 먹지 않는 당신 성격 알면서도 이리로 가재, 먹어보면 확실히 다르대. 그리고 이번 여행은 내 마음대로 하기로 했으니까 군말 말고 따라줘요.
야, 고기 맛이 좀 다르네. 육지에도 같은 방식으로 굽는 고깃집이 있는데 여기가 훨씬 낫네. 그리고 감귤밭이 훤하게 보이니 분위기도 죽인다.
여보, 술맛도 좋다. 참고로 이번 여행 식사비는 당신이 무조건 내요. 태희는 우리가 육지로 돌아갈 때까지 계산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그렇게 하다가는 이모와 이모부 숙소를 호텔로 옮길 거야.
건배!

오늘은 일정이 어떻게 돼요.
일단은 우도로 들어갑시다. 그다음은 우도에서 생각합시다.
오후 4시 40분에 월드컵 경기장에서 K리그 경기가 있는데 같이 보면 안 될까?
일단 우도부터 갑시다.

배 타고 보는 일출봉이 남다른데. 육지에서 보는 것과 많이 다른데. 예전에 유람선 타고 한 바퀴 돌았었을 때와도 다르고.
우도도 길쭉하기만 한 게 아니고 꽤 평평한데요. 걸어서 한 바퀴 도는 게 쉽지 않겠는데……
그래도 일단 걸읍시다.
이게 뭔데? 뭔 오토바이와 전동 스쿠터가 이리 많아! 동남아 툭툭이를 보는 것 같은데. 야! 이거는 규제를 좀 해야지 아닌 것 같은데.
이미 둑의 물은 새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막아! 이미 걸렀어! 우리도 타 볼까?
일단 걸읍시다.
해안가에 힘차게 듬성듬성 올라온 저 식물은 뭐야? 그전에 우리 동네 하천에서도 보지 않았나?
설마 우도에 있는 게 우리 동네 냄새나는 도랑에 있겠어.
냄새는 여기도 나겠다. 저기 쓰레기들 봐라. 아까부터 걸으면서 해안선을 봤는데 쓰레기가 제법 많아. 툭툭이 타고 쓰레기 치우는 날 운영했으면 좋겠다.
자꾸 툭툭이라고 하지 마요. 우도 사람들 들으면 기분 나빠할지 몰라. 그리고 툭툭이만 있는 게 아니고 저기 봐라! 전기차도 종류대로 많잖아. 제한하기는 해야겠다. 우리도 오늘 조심히 잘 살펴서 걸어야겠고, 하여튼 조심해요. 이제는 다치면 힘이 없어서 업고 가지도 못해요.
아까 그 식물 이름 앱으로 찾아봅시다.
앱에선 갯기름나물이라고 하는데,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저기 카페에서 좀 쉬어 갑시다. 허기가 돌고 하루 내내 걸으려면 배가 든든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