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1일
여름방학을 하는 날이다.
오전에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어쩌면 현재 학교의 마지막 학기를 차분히 정리하는 일기를 쓰려고 3월 초 학기를 시작할 때부터 마음먹었었다.
글쓰기 참 힘들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에서 침묵하는 건, 학교의 변화를 위해 다양한 글을 써 온 내겐 회피다.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해맑게 웃으며 교단에 서있어야 할 청춘의 교사가 학교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교사 커뮤니티에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sns, 언론으로 확산되었다.
학교폭력 사안, 교권침해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극단적인 선택',
모든 생물은 생명을 지키도록 진화했다. 진화를 거슬러는, 본능을 거역하는, 스스로의 생명 포기는 생물인 사람으로서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사람의 정신이 황폐화되어 생물의 본능마저 상실했는데, 어찌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정신을 황폐화한 그 원흉을 제대로 신속하게 밝혀야 한다.
왜 우리나라는 꼭 일이 터져야 문제의 원인을 살펴서 철저하게 대비하겠다고 하는가?
왜 반복되고 있는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교원들이, 교원노조와 교원단체가 학교폭력 사안의 부작용과 교권침해를 지속적으로 말했었나?
얼마나 많이 보완 대책이 시급하다고 건의했었나?
그런데도, '그게 사실이라면'이라는 말을 어찌 먼저 할 수 있단 말인가? 몰랐다는 말로 또 책임회피인가.
해당 학교, 학교장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라. 해당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면 학교장이든 대책위원장이든 얼굴을 드러내서 진심으로 애도하고 상황을 차분히 밝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건의 본질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갈 것이란 생각을 못하는가. 종이 쪼가리 뒤에 숨지 마시라. 두려울 게 뭐가 있나, 철저하게 원인을 밝혀서 책임지는 교육적 올바름으로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시라.
지금까진 많은 추측과 소문이 있을 뿐 뚜렷하게 밝혀진 내용은 없다. 원인을 단정짓지 못하지만 젊은 교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그동안 대책이라고 내놓은 정책 과정을 따라 하면 안 된다.
학교의 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면서도, 늘 학교의 문제는 학교 안에서 학교 구성원으로 해결하는 정책을 내놓았고, 그런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교원들이 더 큰 고통을 겪었다.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보단 그것을 처리하는 교원의 고통만이 늘었다. 이제 학교로 침투한 사회 범죄 경찰과 검찰이 처리해야 한다. 조사와 수사 권한도 없고 그것이 목적인 기관도 아니며 전문성도 없는 학교와 교원은 학교에 침투한, 학교폭력과 교권침해로 순화된 사회 범죄를 해결할 수 없다.
교원의 학생 지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교권을 침해할 경우 해당 교원과 인지한 교원이 경찰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교원이 학부모를 신고하면 되겠느냐는 것은 정말 지금의 상황을 나이브하게 보는 태도다. 교원에게 이런 도덕적 굴레를 씌우지 않기 위해서 신고를 의무화해야 한다.
냉정해야 한다. 교사와 관리자의 갈등 문제를 촉발하거나 인권을 해하는 학교 안과 교실의 CCTV 설치와 같은 대책에 열광하면 안 된다. 본질과 관련 없는 구조적이며 민감한 문제를 건드려서 갈등을 유발하여 초점을 흐리며 유유히 빠져나가는 정책에 현혹되면 안 된다.
젊은 교사의 죽음으로 이런 글을 쓴다는 게,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