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2일
개학날, 학교 담장의 능소화는 불어대는 막바지 열기에도 뭉텅이의 꽃을 태양을 향해 흔들었다. 돌아가신 교사를 추모하는 아스팔트의 열기, 교원과 학부모를 적으로 마주하게 할 미래를 여는 염원이 아닐 텐데. 어째 당국은 범인은 잡지 못하고 학생을 함께 걱정해야 할 교원과 학부모 사이에 가림막과 거름망을 설치한다. 좀 더 직설적으로 쓰고 싶으나 지금의 분위기 앞에 본뜻이 호도될까 두려워서 그럴 수가 없다. 비겁하고 나약하다.
어제 출간할 책 계약을 위해 서울의 출판사를 다녀왔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사무실만큼 대표와 직원 분의 인상이 참 좋았다. 계약 기념으로 조촐한 저녁상에 막걸리를 곁들이는데 텔레비전 지역 방송 뉴스에서 공공도서관의 버려지는 헌책이 엄청나다며 헌책 전문의 도 교육청 공공도서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책을 사랑하는-실제로 얼마만큼 책을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노회한 교육 운동가들이 바람잡이였다. 사실은 그들이 실세인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사서 읽는 사람으로서 반대한다. 그 뉴스의 의도를 안다. 누가 그 뉴스를 기획했는지도 짐작한다. 그래서 더 반대한다. 수명을 다한 책은 폐기처리해서 종이로 재활용하고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가치 있는 서적은 해당 기관에 기증하면 된다. 폐기되는 책이 아까우면 지역 헌책방에 기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지역 헌책방을 활성화하는 방향이 더 바람직하다. 상생하는 방안 아닌가?
간혹 새책이 없어서 읽고 싶은 책을 헌책방에서 사서 읽는데-지금 읽고 있는 책도 그렇다 대부분은 개인이 깨끗하게 읽은 책이다. 공공도서관에서 낡고 닳아서 폐기하는 책이 얼마만큼 헌책으로서의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읽고 모은 책으로 이웃과 이야기할 수 있는 작고 소박한 도서관을 만드는 게 꿈이다. 그 꿈을 실현할 수 없으면 지역 헌책방과 필요한 곳에 기증할 것이다. 굳이 헌책을 위한 공공도서관은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