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도움+질문+경청
학교의 교무회의나 동학년협의, 운영위원회, 기타 각종 위원회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논리에 막힌다기 보다는 나의 말투와 태도가 상대방을 자극하여 나의 논리는 맞지만 인정은 하지 않는다는 경험을 많이 한다. 간혹 나의 격정적인 목소리에 설득을 당한 척 하는 사람은 있었다.
이것을 고치려고 말을 줄여봤다. 그런데 참는 것이 어려웠다.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을 뻔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고 나면 역시 후회가 따랐다.
경력이 10년정도 되었을 때였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1학년 학급수가 4학급으로 편성되었다. 그런데 한 부모가 아이를 유예하겠다고 하였다. 만약에 그 학생이 유예가 되면 1학급이 줄어들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법적으로 유예의 결정은 교장선생님이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참가한 가운데 유예심의위원회를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자리에 나도 있었다. 먼저 교장선생님이 학교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학부모의 협조를 구했다. 그런데 학부모가 '선생들이 말끼를 못 알아 듣는다.'는 표현을 비롯한 온갖 인신 공격적인 말을 퍼부었다. 나는 화가 치밀었다. 나이도 특별한 동안이 아니라면 나보다 어린 것이 분명했다. 내가 그 회의에 참석한 교사 중에 제일 어렸으니까? 듣는 선생님들의 입장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내가 나이가 한살 어린 아이도 입학하여 적응을 잘한 예를 설명하면서 부모님의 아이는 의사 소견서를 봤을 때 학교생활에 별 무리가 없을 것이며 학교에서 특별히 잘 보살피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1학년에 입학을 할 때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한 경험을 이야기 했다. 그런데도 그 부모님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설전이 오가다가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들의 역할은 그 부모를 설득하는 것이지, 다른 선생님보다 더 나은 논리를 내세우는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다른 선생님의 말을 가로채거나 끊는 것을 예사롭게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기분이 상해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다음날 교장선생님께 '어제 저는 상당히 그 학부모 때문에 기분이 상했는데 어떻습니까?'라고 했더니 그냥 '그런 일도 생기네'하고 마신다. 그리고 유예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유예를 시키겠다고 하셨다. 학무모와 교사, 교사와 교사 사이의 상처만 남겼다.
나는 분하고 원통했다. 학부모의 태도에 분통하고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설득을 시지지 못한 것이 더 원통했다. 그래서 똑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이기리라 다짐을 하였다. 질문법, 화술, 리더십에 대한 다양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실천하려고 노력도 하고 있다. 그리고 이기는 방법은 알았다.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고 적절한 문을 하고 잘 들어주는 것이 그 방법이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 안 사실이지만 그 학부모가 아이를 유예를 시키고자 한 것은 적응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학부모를 도와 주려는 태도를 가졌더라면 결과가 어떻게 어떠했을까?
그리고 적절한 질문을 했더라면--- ---. '그런 표현을 하면 마음이 편합니까?' ' 아이를 유예 시키려는 또다른 이유는 없습니까?' '유예를 시키면 아이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유예를 시킬정도로 그 이유가 소중할까요?'라고 했더라면--- ---.
그날 분위기가 서로의 생각이 맞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하다보니 상대방의 이야기에 진정성 있게 들어 주지 못했다. 주장하는 시간보다는 들으려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공감하면서 경청하는 태도가 필요했다.
설득을 당하는 것이 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설득을 시키기 위해서는 지는 태도도 필요하다. 실천 또한 어렵다.
하지만 상대방을 도와주고 적절한 질문을 하며 진정성 있게 들어주는 태도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