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6일
살다 보면, 평소 나답지 않게 원인 모를 인식과 인지 오작동으로-전문 용어는 '귀신에 홀렸다'- 엉뚱한 판단과 선택을 할 때가 있다. 내 경험으로는 특정한 한 가지에 지나치게 몰입하거나 되었을 때 기존의 경험과 지식이 의심을 받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하튼 그런 판단과 선택의 여파가 나에게만 미쳤으면 '아이고 내가 미쳤나 봐!'하고 끝날 일이다. 하지만 주변에 영향을 끼쳐 혼란을 자초한 걸 뒤늦게 알았으면 '순간적으로 내가 미쳤었나 봐?'라며 겸연쩍게 넘기기보다 탓할 대상과 꼬투리를 찾는다. 특히, 지위가 높으면 더 그렇다. 예전에는 이러는 사람을 몰아붙여 '네 잘못이다.'를 논리적으로 증명했다. 그러나 요즘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면 슬그머니 상대방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준다.
내가 끝까지 지키려는 신념 중의 하나가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특히 외압을 행사한 사람에게 외압의 부당함을 차근차근 알렸는데도 더 큰 외압으로 맞서오면 그냥 놓아두지를 않고 일체의 관계를 끊어버린다. 그냥 놓아두지 않을 재주와 능력이 없을 때는 영원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사람으로 여긴다. 미워하는 마음을 담아두지도 않는 그냥 없는 사람이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솟구치는 분노를 가만히 가라앉혔다. 아무 관련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외압을 행사하도록 부추기는 놈이나 그런 부탁을 받고 실행하는 놈, 둘 다 측은했다. 한 놈은 어려서 당장의 이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한 놈은 세상 경험이 나보다 더 풍부해서 세상을 지혜롭게 살 수 있을 텐데, 내가 알았던 그때에 인간으로서의 성장이 멈춘 모양이었다.
오늘아침에 어제 일을 가만히 떠올리니, 능청스럽게 듣고는 엉뚱한 말로 웃으며 전화 끊은 내가 무척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직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놈들을 응징해야 세상이 좀 더 좋아진다는 신념이 여전히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게 삶의 지혜인지 비겁하게 회피하려는 정당성 추구인지 구분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