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6일
언제가 되면 다른 사람의 대수롭지 않은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을까?
언제가 되면 할 말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할 말과 안 할 말을 구분할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술기운으로 정신없이 논 다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못하는 실망에 대한 언짢음과 절제하지 못한 죄책감이 선명해진다. 더불어 비슷한 관점으로 학교를 변화시켜 보자는 사람들과의 허물없는 대화가 그리워진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아마 그런 그리움을 달래 보려는 자기 강화일 것이다.
요즘은 그런 그리움의 낌새가 있는 사람에게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라고 권유한다. 그런 읽기와 쓰기가 그리움을 더 그립게 할 수도, 그리워하는 나를 만나러 오는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함께 한다. 어리둥절해하며 언제가 지금 하는 내 말을 이해하는 날도 올 것이라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기억을 강화하고 성찰하는 행위이다. 지내다 보면 젊었을 적의 내가 한 말을 나에게 하는 사람을 만나고, 젊었을 적의 나의 무례대로 나에게 앙갚음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럴 때에, 누군가 나에게 '너도 너와 똑같은 사람 만날 것이다.'라고 한 옛날의 한 장면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았다면 옛날의 나로 자책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옛날의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더 이해한다. 그 이해로 그 사람이 처한 곤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지한다. 그 사람의 곤란과 혼란은 대부분 곧 사라지겠지만 인적 물적 환경이 그 혼란과 곤란을 얼마나 이해하고 허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장은 달라질 것이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과 역량을 구분하려고 애쓴다. 일도 잘하고 사람도 좋으면 정말 좋지만 그런 사람 거의 없다. 그 사람이 좋든 싫든 주어진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이 뚜렷하다. 좋든 싫든은 주어진 일을 하는데에 윤리적인 흠결은 없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보편적인 아쉬운 감정을 유발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어떤 사람들은 개인주의라고 말하지만 나는, 역량이 있는데 편하려고 일부러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좋은 사람이라는 감정으로 모든 일을 회피하는 사람을 개인주의라고 말한다.
처음이어서, 생소해서, 습관화되지 못해서 새롭게 주어진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주어진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가 할 일이지 비난하는 게 우리의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것도 좋은 사람이 아니다.
계속 젊었을 적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럴 적마다 젊었을 적의 나처럼 상처받지 않게 잘 도울 것이다. 보답은 바라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