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리더십

주도권을 양보하자!

멋지다! 김샘! 2013. 1. 22. 10:34

얼마전에 후배가 나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협의회를 하는데 한 선생님이 협의회의 방향과 다른 문제제기를 계속 하더라고 합니다. 계속 참고 있다가 '그러면 문제만 제기 하지 말고 제기 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이야기 하세요?'라고 하니 별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뒤에 우연히 SNS에서 문제를 제기한 선생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글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의 의견을 왜 반영하지 않고 불만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너무 슬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문득, 초임 시절의 떠올랐습니다. 그때에 제 별명이 '투덜이'었다고 합니다. 학교의 교무회의와 기타 협의회에서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본 선배 선생님들이 명명했다고 하더군요. 사실 아내와 결혼을 한 후 아내가 알려주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충고나 조언을 해주는 분들도 없었고, 불평과 불만을 제기한다는 생각보다 좀 바꾸어 보자는 의견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이러한 문제를 PC통신에 올리면 돌아오는 답변의 대부분은 '참아라',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더러워서 피한다.'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답변을 계속 들으니 '왜, 불합리한 것을 바꾸지 못하지?'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게 되었고, 학교의 여러 회의와 협의회에서 '투덜이'로 비춰진 것 같았습니다.

 

 아마 지금 후배와 그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갈등이 나의 초임에 가지고 있었던 갈등과 같다고 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후배에게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협의회의 목적을 충분히 설명하고 문제제기보다는 목적에 맞는 의견을 제시해 달라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 좋겠다고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해도 변화가 없다면 무시하라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나의 조언이 옳은 방법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초임 시절에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 당시에 선배들과 자주 언쟁을 했던 말이 '네 말이 맞기는 한데, 그렇게 하기에는 좀 힘들다.'는 것에 대해 '그러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회피하는 것은 맞습니까?'로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선생님도 거의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와 똑 같은 선배가 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후배에게 협의회의 주도권을 그 선생님에게 넘기도록 조언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안건으로 협의회를 할 때 그 선생님이 똑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과감하게 '저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고, 고민도 많이 해 본 듯하니 진행을 선생님이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의도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진정성있게 질문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비꼬는 듯한 뉘앙스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의 문화가 변화가 없다고 불평을 하면서 초임시절의 선배와 같은 행동을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기려는 생각과 자존심 보다 상황에 따라 주도권을 양보하는 것이 학교 문화의 변화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