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셔야(?) 합니다.Ⅰ
교감으로 승진하는 선배를 축하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선배는 본인이 싫어하는 교감과 같은 관리자가 안될 것이라고 다짐하며 좋은 자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같습니다. 그 중에서 한 후배가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 후배는 시골의 작은 학교에 근무합니다. 그 학교의 관리자는 학교 사택(관사)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택에 사는 것이 학교와 가까워서 좋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가족이 이사를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됩니다. 특히, 연세가 있는 남자 관리자의 경우는 많이 불편합니다. 그나마 학생들이 학교에 있을 때에는 점심이라도 학교급식으로 해결하지만 방학이면 살기 힘듭니다. 그래서 시골학교의 사택에 홀로 사시는 남자 관리자를 독거노인(?)이라고 농담조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아는 후배가 관리자와 같이 식사 대접을 하기도 하고 얻어 먹기도 하며 방학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젊은 놈이 관리자에게 잘 보여서 출세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고 합니다. 어떤 동료교사는 노골적으로 이런 소문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학교생활하기가 참 난처하다고 합니다. 특히 관리자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저 역시 시골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관리자 혼자서 사택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계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좀 먼 거리지만 출퇴근을 하고 있었고 관리자와도 같은 지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제 차로 모시고 다니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극구 사양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단 몇번 타보시고 불편하면 그때 알아서 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골이라 집을 구하지 못한 신규교사 두 명도 함께 타고 다녔습니다. 물론 교통비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몇달이 지난 뒤에 이상한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출세하기 위해서 관리자의 운전기사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관리자에게 잘 보여서 근무평점을 잘 받아도 아무 소용이 없는 상황이었고, 주변의 동료 교사들도 이런 나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는데도……. 참 난감했습니다.
학교에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부터 관리자와 교사는 같은 울타리에 있어도 남인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왜 그런지도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리자가 되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고, 관리자가 되려고 욕심 부리는 동료나 친구들을 보면서 저런 노력으로 아이들을 위하거나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훨씬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강한 사람'으로 통하기도 하지만, 내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를 사는 일도 많습니다. 또 학교의 갈등상황에서도 제 생각을 밝히는 편이고, 관리자에게도 건의할 내용을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어떨 때에는 정곡을 찌르는 말로 당황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리더십 공부를 하면서 부드러워지기 위한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본심을 숨기고 남의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불편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갈등상황에서 원칙적인 의견을 전달하기 보다 분위기에 따라 타협하는 듯하여 '강한 사람'으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그대신 다짐을 하였습니다.
'의견 충돌로 관리자와 갈등이 있더라도 절대 언성을 높이지 않겠다.'
'관리자를 비롯한 동료와 갈등이 있을때 아무리 화가 나도 절대 욕설을 비롯한 폭력을 사용하지 않겠다.'
'나의 의견도 절대적이지 않다. 수용은 상대방이 하는 것이다.'
'나의 주장이 옳다면 치밀하고 논리적인 방법을 찾아 설득을 시도한다.'
초등학교 교장이 직업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신문으로 이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초등학교 교사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대부분은 한숨을 쉬며 '그래 참 좋은 직업이지? 학교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하는 직업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일 것입니다.
그런데 교장선생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옛날과 비교하면 관리자 하기 정말 힘들다고 합니다. '조그만 실수라도 하면 선생들이 홈페이지 올리고, 학부모들의 요구는 날로 많아지고, 교육청의 지시도 많아지고…….' 힘들어서 교장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게 원하던 교장이 되었지만 소신있게 학교 운영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제가 꿈꾸는 관리자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교사들이 관리자에게 바라는 것들입니다.
'선생님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
'갈등상황에서 개인의 욕심보다 교육을 먼저 생각하겠다.'
'선생님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 지는 것이 아니라 멋있는 관리자가 되는 것이다.'
'일방적인 강요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을 먼저 하겠다.'
'아이들과 학부모 앞에서 망신주지 않겠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교사에게 먼저 손을 내밀겠다.'
저의 다짐과 제가 꿈꾸는 관리자가 만나면 정말 좋은 학교 되겠죠?
우리의 뇌는 쉽게 모방한다고 합니다. 특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모방하는 속도는 더 빠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가정에 건강한 자녀가 많고, 문제 가정에 문제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부모가 나쁜 행동을 하면서 아이에게 따라하지 말라고 해도 이미 아이의 뇌는 부모의 행동을 모방했기에 부모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그치는 것보다 평소 모범을 보이는 것이 아이에게 훨씬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학교도 똑같습니다. 교직 경력이 20년이 되었지만 학교문화는 달라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도 뇌의 모방성 때문입니다. 내가 관리자가 되면 학교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관리자가 되면 별 차이가 없는 것도 교사시절에 훌륭한 관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교사시절에 본받고 싶지 않은 관리자를 원망하고 거부하는 과정에서 뇌가 모방을 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훌륭한 관리자는 교사 시절에 훌륭한 관리자와 학교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끊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노력한 결과입니다.
관리자와 밥 같이 먹었다고, 관리자와 카풀했다고 오해하지 않는 학교 만드려면 건전한 학교 문화를 모방시켜야 합니다. 교사는 관리자를 존중하고 잘 모셔야(?) 합니다. 관리자도 교사를 소모품이 아닌 동반자적인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학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좋은 학교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절대 남이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작은 나의 좋은 변화가 좋은 학교를 남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