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리더십

힘든 선생님을 위하여!

멋지다! 김샘! 2013. 4. 23. 12:26

 학교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주체인 선생님들이 많이 힘듭니다. 다양한 방과후 학교 운영, 토요 프로그램 운영, 학력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기대, 돌봄교실 운영, 학교폭력을 비롯한 생활지도의 어려움, 지나친 실적 주의 등으로 선생님들이 힘듭니다. 그나마 힘들어도 교사에 대한 권위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것마저도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출근하면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쁩니다. 어떤 선생님은 방광염에 걸렸습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학부모와 학생의 도전에 힘들어 하시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동학년 선생님끼리 협의회 할 시간도 없습니다. 그러면 수업때문에 그럴까요? 아닙니다. 본연의 수업보다는 사회에서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들을 교육당국이 걸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관리자의 지나친 욕심과 실적주의 때문이기도 합니다.

 

 선생님들이 수업보다는 사회의 요구와 실적주의를 떠받치는 행정 담당자가 된 듯합니다.

 학교에는 다양하고 많은 분들이 근무합니다. 선생님은 이런 다양하고 많은 분들의 수당 지급을 비롯한 관리와 감독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 박힌 신자유주의 교육정책때문에 실적중심의 학교평가를 받습니다. 모든 교육활동에 보도자료를 내는 것은 기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휴무일이나 공휴일에 학생들을 인솔하여 각종대회에 참가해야 합니다. 교육적인 목적으로 참가하는 것보다 실적을 내기 위해서 이상한(?) 단체에서 돈을 벌 수단으로 개최하는 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학교특색 사업을 한다고 도시의 학교에서 벼를 심고 있습니다. 학생교육을 위해서 벼를 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성장한 선생님은 벼를 심고 관리할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전문가에게 배워야 합니다. 가을의 어느날 신문에는 벼를 심은 학교가 학생들이 아주 알찬 체험활동을 한 것처럼 포장되어 보도됩니다. 사실 그 벼는 교재연구 할 시간에 벼를 가꾸기 위해 노력한 선생님의 땀과 스트레스입니다. 아이들은 단순히 벼가 자라나는 것을 꽃구경 하듯이 본 것 뿐입니다. 

 

 교육부도 선생님이 힘들어 함을 아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리한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승진에 필요한 가산점을 제시합니다. 마치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이 승진에만 목을 메달고 있다고 느끼는 모양입니다. 그것도 그냥 주지 않습니다. 경쟁을 시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폭력 우수 교원에게 주는 가산점 0.1입니다. 단위학교 선생님의 40%에게만 준다고 합니다. 정말 희한한 발상 아닙니까? 학교폭력을 비롯한 생활지도는 선생님의 고유업무입니다. 나머지 60%의 선생님은 학교폭력 지도 안해도 된다는 뜻입니까? 교육부가 학교를 선생님을 분열시키고 학교를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그 외에 선생님들에게 주어지는 많은 인센티브도 이런 식입니다. 오죽하면 교육부가 없으면 교육이 더 잘되겠다고 하겠습니까?

 

 이렇게 힘든 선생님들을 위하여 학교 외부에서 위로가 될 만한 제도와 정책을 제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단위학교에서 그 힘듬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될 때가 온듯 합니다.

 

 먼저 예측 가능한 교육활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들어 가는 교육과정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 의미는 좋습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교육활동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모든 교육활동은 상황에 맞게 융통성 있게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야 합니다. 갑자기 임시회의가 있다고 교무회의를 소집합니다. 임시회의라는 말 자체도 싫은데, 그 회의에서 관리자가 다른학교에서 하는 활동을 하라고 합니다. 난감합니다. 회식도 그날 알려주면 여러가지 곤란한 문제가 생겨서 힘든데, 하물며 새로운 교육활동을 지시하면 모든 것들을 재조정해야 됩니다. 너무 힘듭니다.

 사람은 예측가능한 것에는 쉽게 적응을 합니다. 처음에 힘든 것들도 주기적으로 반복되면 덜 힘들어 집니다.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종 위원회 및 회의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개최하면 하기 싫은 회의도 면역성이 생겨 덜 힘들어집니다. 회의내용도 미리 알려준다면 더 좋겠죠? 

 보통 월요일에 실시하는 교무회의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원인은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 다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회의내용 미리 알려주고 예측 못한 업무 지시 없이 빨리 마치면 묘한 희열감을 느낍니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워크샵을 통해 결정됩니다. 운영하다가 개선해야 될 점이 생기면 학년말 워크샵을 통하여 새롭게 구성하여 다음해에 적용하면 됩니다. 즉흥적으로 새로운 교육육활동을 지시하는 것은 융통성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융통성은 그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상황과 환경에 맞게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즉흥적이고 예측불가능한 것은 융통성이 아닙니다.

 

 두번째는 과감한 포기가 필요합니다. 벼에 대한 체험활동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까운 벼농가와 계약을 하여 학생들이 주기적으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학교 부지에 작은 논을 만들어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이것도 안되면 포기해야 됩니다. 체험활동의 목적은 꽃구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벼재배가 학생 체험활동이 목적이 아니라 홍보용이라면 선생님에게 업무 맡기면 안되겠죠?

 휴무일이나 공휴일에 학생을 인솔하여 대회에 참가하는것도 교육적인 대회만 참여하고 홍보를 위한 입상 목적이라면 포기해야 됩니다. 홍보목적보다는 참가경비, 출장비, 안전사고 등에 따르는 지출이 더 큽니다. 그리고 공휴일은 선생님에게는 재충전의 기회이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소중한 시간을 홍보목적의 비교육적인 대회에 소모하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선생님들의 방과후 학교, 토요 휴뮤일 프로그램 참가도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포기해야 됩니다. 도시와 먼거리에 있는 학교는 강사를 구하지 못해 선생님들이 부득이하게 참여합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포기해야 합니다. 일자리 창출과 전문 예체능 영역은 외부 전문강사가 지도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더 잘 가르칠 수 있다는 뜻은 좋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낳습니다.

 

 세번째는 주 1회 정도 힘듬을 풀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들의 힘듬을 이해하는 관리자라면 많은 선생님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선생님들이 원한다면 방과후에 수다를 떨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야 합니다. 수다는 정신적인 힘듬을 해결하는 좋은 보약입니다.

 정신적인 힘듬을 육체적인 활동으로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수요일마다 하는 교직원체육연수에 배구만 하지말고, 다양한 종목으로 교직원의 참여를 유도해야 합니다. 피곤하다고 불참하는 선생님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십시오. 서로 얼굴 보며 웃고 소리지르다 보면 힘듬이 풀립니다. 자연스러운 동료장학도 이루어집니다. 적극적인 참여를 권장합니다.

 

 네번째는 관리자와 동료 선생님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합니다. 힘들다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고,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갈등하는 선생님이 있으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흔히 교직집단을 뭉쳐는 있지만 외부의 작은 충격에 쉽게 무너지고 작은 틈에 물만 부으면 뭉쳐지지 않는 모래알 집단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충격이 가해지거나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같이 해결하려는 콘크리트와 같은 집단이 되어야 합니다. 학부모와 갈등이 생기면 '좋은게 좋은 것이다.'식으로 해결하면 안됩니다. 정확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선생님이나 학교의 책임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법의 도움이 필요하면 교육청이나 교원단체의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당당하게 정의를 쫓는 선생님들이 많아지면 그 힘듬도 줄어듭니다.

 

 다섯번째는 선생님에게 주어진 책무 다해야 됩니다. 복무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아이들 잘 가르쳐야 합니다. 선생님의 품위 유지해야 합니다. 책무를 다할 때 힘듬을 주장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생기며, 주위의 지지도 얻을 수 있습니다. 힘들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하면 의외의 보람으로 힘듬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유로 선생님들이 힘듭니다. 그 힘듬의 해결도 선생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참여와 실천이 해결책입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로 시작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