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외선 차단용 마스크를 벗자!
교육대학교에서 체육을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늘 강조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체육수업을 할때에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모두 벗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아이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체육수업을 해야 아이들이 선생님을 잘 따르고 아이들의 마음도 이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수업을 하기 위해 줄을 설때에도 아이들은 태양을 등지게 하고게, 대신 선생님이 태양을 안고 수업을 하라는 것이었습다. 그것이 체육수업을 하는 선생님의 자질이라고 덧붙혔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대부분의 학교가 다목적관(강당과 체육관을 겸임하는 실내장소)과 체육관이 건립되어 체육수업에 기후가 큰 변수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체육수업을 비롯한 야외 교육활동을 할때 상당한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이 자외선 차단용 마스크입니다. 특히, 얼굴 전체를 다 가리는 자외선 차단용 마스크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합니다. 이에 대해서 자외선 차단용 마스크 착용을 찬성하는 쪽은 예전에 모자와 선글라스가 거부감을 일으켰지만 지금은 일반화되었듯이 자외선 차단용 마스크 역시 지금은 생소하여 거부감은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일반화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언론에서 자외선 수치가 높은 날은 가능한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꼭 필요한 경우는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활동하라는 것에서도 자외선 차단용 마스크의 착용은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쪽의 의견은 아이들은 자외선 차단제와 모자가 전부인데-이것도 부모님이 신경을 써는 아이의 경우입니다- 반해, 선생님이 너무 많이 중무장이(?)을 하면 아이들의 반감을 사서 체육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이것을 아는 학부모들도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시범을 비롯한 많은 활동을 해야 되는데, 이것들 때문에 선생님의 활동이 줄어들어 교육활동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두 쪽의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며, 무리한 주장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지식 전달자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돕는 조력자, 성장하는 아이들의 멘토 역할이라는 점에서 접근하면 쉽게 결론이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산권의 어느 나라에서 피임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당연히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이 생겼을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탁아소를 만들어 이 아이들을 수용하였는데, 이 아이들이 자라면서 예상치 못한 심각한 행동장애를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가정폭력에 많이 노출된 아이는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며, 혼자 자란 아이는 싸이코패스나 자폐아가 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은 각종 논문을 통해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어릴적에 자신의 행동에 따른 상대방의 얼굴 변화를 통해서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도 상대방에게 얼굴과 몸짓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국가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자란 아이나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 혼자 자란 아이는 이 감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거나 왜곡되어 심각한 행동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폭력을 휘두르면서 피해를 입는 상대의 감정을 알지 못하며, 심지어 살인을 하고도 반성의 기미도 없이 태연하게 재연하는 것도 같은 논리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얼굴 변화로 감정을 배우는 중요한 시기에 자외선 차단용 마스크로 얼굴를 가린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선생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어릴적에는 잘 놀아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놀이 과정에서 부모의 얼굴 변화로 감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자외선 차단 마스크를 착용하고 잘 놀아준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자외선이 두려우면 실내에서 활동하고, 자외선이 덜한 계절에 야외활동을 많이 하면 됩니다. 학교는 탄력적이고 융통성 있는 교육과정 운영하면 되고, 운동과 건강에 욕심이 많은 부모님도 자외선 차단 마스크를 착용하고 아이들과 동행하지 마십시오.
꼭 필요한 야외활동이라면 최소한 얼굴은 아이들에게 보여줍시다.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서 자외선 차단 마스크 때와 장소를 가려서 착용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