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닙니다!
대학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학교에서 교무부장을 비롯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처지라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도 학교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요즘 후배들이 우리들이 선배를 대했던 것과 차이가 많이나고 예의가 없다는 등의 이야기와 어떤 선생님은 사사건건 반대하고, 어떤 선생님은 결정된 사항을 따르지 않아서 제대로 알려주면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들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다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공감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선 방안이 없는 불만으로만 대화가 마무리 되는 것이 아쉬워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인간관계를 맺기 어려운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부류는 의사결정을 하는 협의회나 회의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뒤돌아서서 무조건 불만을 토로합니다. 더욱 힘든 것은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관리자나 동료가 제대로 할 것을 요구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감정적으로 대응을 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동료들에게 한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는 자신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리자나 동료는 그 사람이 웬만한 비교육적인 언행을 해도 묵인하고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언행이 관리자나 동료가 모른체하고 넘어가서 끝날 일이 있는 반면 자칫잘못하면 학교 전체나 교육계에 큰 어려움을 줄 가능성이 있는 일들일 경우에는 솔직하게 말하고 더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저지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상습적으로 고함을 지르고 폭언에 가까운 말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별탈없이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한 아이에게 인격모독에 가까운 일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시켰습니다. 내용을 알면 그 선생님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현재의 사회 분위기에는 반하는 아슬아슬한 수준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관리자와 동료들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수근거릴 뿐 그 선생님을 만류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말을 해도 잘 듣지 않고 자기 변명만 하고 그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만 입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이 잘(?) 넘어갔습니다. 관리자와 동료들도 여느 때와 같이 뒤돌아서서 그 선생님을 비난만 하였습니다.
관료자와 동료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기 싫어서 그 상황을 회피하였습니다. 만약에 이 문제가 사건화 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을까요? 물론 그 선생님이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학교는 얼마나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겠습니까? 선생님들의 능력과 신뢰는 얼마나 상처를 받겠습니까?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학교와 선생님이고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 교육계입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동료의 잘못된 언행을 묵인하는 것은 결국 내가 속한 학교와 교육계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상처로, 기분 나쁨의 문제는 물처럼 흘러보내고 학교와 교육계에 상처를 입히는 장애물은 거시적인 마음의 거물로 걷어 내어야 합니다. 솔직하고 과감하게 말해야 합니다.
두번째 부류는 관리자와 동료들의 생각과 다른 생각으로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사람들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업무를 효율성을 떨어뜨리기보다는 다른 생각으로 교육활동이나 업무를 지연시킵니다.
예년과 같이 현장체험학습을 계획하고 발표를 했습니다. 연례행사라는 마음으로 다른 동료들은 수긍하고 받아들이는데, 이왕하는 현장체험행사라면 좀 더 교육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생소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학교행사가 끝난 후에 선생님들이 피곤하다고 교무부장님이 관리자분들께 건의하여 아이들이 모두 귀가하면 평소보다 좀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선생님이 조퇴로 결재를 득한 후에 퇴근하자고 합니다. 다른 분들은 무슨 일이 생기지도 않을텐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냐고 불만입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의 생각은 조퇴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고, 만약에 복무감사가 오더라도 책임질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수업시간 엄수와 기초기본을 강조하는 관리자가 자신의 교육철학을 추진하기 위하여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지장을 초래하는 무리한 계획을 세워서 추진하려고 합니다. 유독 한 선생님이 평소의 관리자의 강조사항과 어긋나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한다고 방과후나 토요휴업일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다른 선생님들은 정상적인 수업하기도 벅찬데 방과후나 토요일까지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방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무조건적인 방해가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는 차단자입니다. 상당히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기 때문에 반박할 수 있는 여지가 부족하고 그렇게 해야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정적인 대응에서 벗어난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여 수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수용해야 합니다. 특히 복무에 관련된 내용이라면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생각의 차이라면 실행가능성을 차단자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여러가지 환경과 여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고려하는 과정에 차단자를 반드시 참여시켜 적극적으로 말하고 설득시킬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여건과 환경이 충분하고 구성원들이 설득을 당했다면(?) 과감하게 차단자에게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주도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여건과 환경, 구성원들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실현가능성이 부족한 차단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자극적인 언행으로 감정적인 패배감을 안기는 것보다 새로운 접근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준 것에 대한 배려와 위로의 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차단자가 받아들인다면 동료와 함께 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관리자와 동료, 동료와 동료의 관계는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닙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듯이 상대방도 내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나와 같은 언행을 할 것이라고 기대를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내가 한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상대방의 농담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을 만드려 하지 않고 회피하려고 합니다.
문제가 될 소지를 안고 있는 동료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피하려 하지말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진솔하게 말해서 문제의 확산을 차단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더라도 동료에게 진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주장이 실현가능성이 부족하면 동료의 의견을 수용하고 지지하십시오. 결코 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차단자의 의견이 옳다면 과감하게 수용하고 지지해 주십시오. 지지한다고 지는 것이 아닙니다.
관리자가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선생님의 의견을 수용한다고 지는 것이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존경받는 관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지나치게 자기를 보호하려는 마음은 결국 학교와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진솔하고 과감하게 말하고 수용하는 우리가 되어 행복한 학교 만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