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리더십/신규교사 멘토링

나의 수업을 간섭하지 마라!

멋지다! 김샘! 2014. 6. 21. 09:23

 발령을 받아 처음 간 학교에서 공개수업을 하게되었습니다. 교육청에서 장학지도를 오는데 공개수업을 의무적으로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선배선생님들이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해서 별 부담감을 갖지 않고 스스로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관리자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가능하면 선배선생님들이 하기를 원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선배선생님들이 없자 할 수 없이 허락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학교를 대표해서 멋진 수업을 장학사에게 보여 주어야 되는데 신규선생님이 그 역할을 하는 것에 불만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별 간섭(?)이 없었고, 조언도 지원도 없었습니다.

 장학지도 당일에 나름대로 공개수업을 열심히 했습니다. 완전히 만족한 것은 아니였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수업이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장학사와 함께한 협의회에서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수업자의 의도는 물론 수업의 진행과정에 대한 질문이나 조언은 아예 없었고, 신규선생님이 하는 수업이 '그렇지 뭐!'하는 것으로 협의회가 끝이 났습니다.

 저녁에 선배선생님과 맥주를 한잔 하면서 기분이 이상하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관리자가 생각하는 좋은 수업을 소화하기에는 신규인 저의 소양이 너무 부족하다고 판단되었기때문에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장학지도 당일 장학사에게도 그렇게 전달하여 수업협의회가 그렇게 진행되었다고 했습니다. 열도 후끈 올라오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습니다.

 

 그 뒤 수업에 대한 책을 읽고 적용하는 것을 반복하였습니다. 몇년 뒤에 열린교육이 판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환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책을 통하여 열린교육을 알고 나름대로 실천하고 있었기에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획일화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린교육이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은 닫힌 교육으로 변질된 것이었습니다.

 ICT활용 수업도 그랬습니다.

 스마트교육도 그렇습니다.

 융합교육도 그렇습니다.

 PCK를 활용한 수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학생들에게 창의성과 다양한 문제 해결력을 기르기 위한 교수법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그 형식이 정해져 있고, 교수학습과정이 획일화 되어 있는데 어떻게 창의력에 바탕을 둔 다양한 문제 해결력이 길러지겠습니까? 전통적인 수업에 무늬만 바뀌었는데 창의성이 길러지겠습니까?

 해마다 수업연구대회가 실시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수학습 모형을 정해준다는 것입니다. 정해진 틀속에서 보기좋은 수업은 하라는 것입니다. 수업이 아이들에게 효과가 있는지는 검증이되지 않고 오직 심사위원들의 생각과 일치하면 좋은 수업이라고 인증을 받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해야되는데 심사위원들을 위한 수업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컨설팅 장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석교사를 비롯한 다양한 수업 전문가들이 컨성팅 장학을 하고 있습니다. 수업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경험에 의한 컨설팅, 외국의 사례 소개, 교육학자들의 이론 전달, 개정 교육과정의 전달, 특정 교수학습 모형의 연수 등입니다. 컨설턴터가 적용하고 검증한 뚜렷한 교수학습모형이 없습니다.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주관적인 지혜가 아닌 과학적인 지식이나 근거, 교육이론을 수업에 적용하고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지혜는 없습니다.

 '소인수 학급에 맞는 수업을 하십시오. 과밀 학급에 맞는 수업을 하십시오.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수업을 하십시오'와 같은 추상적인 조언만 있을 뿐입니다.

 

 얼마 전에 교원평가와 동료장학을 겸한 공개수업이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뚜렷하게 반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고, 관리자들은 이번 기회에 본인들이 생각하는 좋은 수업을 강요하기 위한 좋은 기회를 얻은 듯 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두가지 시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는 그동안 뇌과학, 심리, 기억의 원리, 리더십 등을 근거로 하고 있었던 소인수 학급에서의 나만의 교수학습방법을 모형으로 구안하고 적용한 후 협의회 시 반응을 살펴보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이 모형은 공개수업을 위해 새롭게 구안한 것이 아니라, 많은 고민과 연구에 의한 소인수 학급에 효과적인 나만의 수업방법을 정리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모형을 'M&PE문제해결모형'이라고 제법 근사하게 이름지어 지도안에 표시해 두었습니다.

 두번째는 공개수업에 대한 부담감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선택한 방법은 수업자의 수업의도를 최대한 존중하고, 칭찬으로 격력하며, 수업의 결점을 찾는 것보다 현시대에서의 수업의 방향이 어떠해야 되는지에 대한 토의 주제를 던져보기로 하였습니다.

 

 첫번째 실험의 결과는 예상한대로 나만의 교수학습모형인  'M&PE문제해결모형'에 대하여 질문하는 분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치밀하고 계획적인 수업이었고, 학생 밀착형 수업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학생들의 글씨, 연필 잡는 법, 판서에 대한 전형적인 수업협의회에서 하는 말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리고 어떤 관리자는 자신의 경험만으로 수업을 평가하는 오류를 역시 범했습니다. 토론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실험에서는 나의 수업을 먼저 본 일부 선생님들이 보여주기 위한 수업보다 실제 학생들과 이루어지는 수업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고무적이었고, 1차 수업협의회에서 수업자의 수업의도를 말하는 시간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생각할 토의주제를 던졌지만 이야기가 이어나가지는 못했다. 관리자가 포함된 협의회 시간에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는 학교문화와도 관련이 있는 듯하여 학교문화를 바꾸는 것도 수업의 질을 개선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수업자에게 지적보다는 칭찬과 격려하는 방법은 자신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수업자의 수업을 지적하고 나무랄 가능성이 있는 다른 참관자에게 영향을 미쳐서 협의회의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효과와 함께 공개수업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데 미미한 효과가 있는 듯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수업에 너무 쉽게 관여하고 평가하는 이면에는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에 의한 지혜에 의지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위가 높아지면 너무 쉽게 선생님들의 수업에 관여하고 평가합니다.

 선생님들도 나만의 학습방법과 모형을 찾기보다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각종 이론들에 수업을 끼워 맞추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잘하면 수업과 장학활동 잘한다고 치켜세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는 없거나 주관적인 판단이 전부입니다.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수업을 한 것입니다.

 교육계의 최신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수업에 반영하는 것을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맞추어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지 못하면 수업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번 공개수업을 통해서 확인한 것이 'M&PE문제해결모형'을 처음 들어보는 것인데도 무슨 모형인지 질문을 하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질문을 하게 되면 새로운 모형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 탄로날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 확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들의 다양한 창의적인 수업이 수업의 질을 개선시켜 미래사회가 바라는 인재가 양성되는 것은 당연한 가치입니다.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도록 학교 문화를 변화시키면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업이 가능한 것도 알고 있는 가치입니다.

 하지만 지위에 의해 강요되는 수업협태, 각종 최신 교육동향에 의해 억지로 끼워 맞춰진 수업으로 미래 인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위와 주관적인 경험에 의해 생긴 지혜로 수업에 관여하고 평가하는 것이 몰상식으로 바뀌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에 의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좋은 수업을 위한 선생님들의 노력이 사실적 현상이 된다면 미래사회가 바라는 인재가 양성되는 것이 가치가 아닌 사실이 될 것입니다.

 가치가 사실로 바뀌는 과정에서 진정으로 '나의 수업을 간섭하지 마라!'고 외칠 수 있으려면 자신만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지위에 의한 간섭에서 당당할 수 있고 가르치는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수업은 선생님이 바꾸어야 합니다.

 

 '나의 수업을 간섭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