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언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과 영재교육

멋지다! 김샘! 2015. 2. 21. 12:20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이 태동할 시기부터 10년 넘게 영재교육원 강사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토요일이 휴업일이 아니었고, 방학때면 교육개발원에서 주관하는 합숙연수를 비롯한 각종 연수와 영재원 집중수업과 프로젝트 추진 등으로 남다른 희생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영재강사의 인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가 장점이 되어 영재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충만한 강사들로 영재교육원이 구성되었고, 영재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열의가 현재보다 훨씬 덜 했기때문에 영재성이 있는 학생들이 제대로 선발되어서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부에서 고생하는 영재원 강사들을 보상하기 위해서 각반 담임에 한해서 승진가산점(최대 0.2)을 부여한 것과 영재교육에 대한 과열현상으로 학원에서 길러진 영재학생의 선발, 공부 잘하는 아이가 영재라는 오해를 극복하지 못하는 현실, 영재교육원장을 지역교육지원청 교육장이 겸임하기 때문에 교육실적을 높이기 위해 각종 공모대회 출전을 비롯한 수단적 이용, 영재강사 연수의 부실, 영재교육을 바라보는 진보교육자들의 편견 등으로 영재교육이 발전하지 못하고 스펙을 쌓기 위한 공교육 학원으로 전락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할때는 잘했는데, 남이 하니까 안된다.'는 감정적인 대응이나, 현재의 영재강사를 비난하는 것이 결코 아닌, 방향성을 잃은 영재교육의 현실을 어찌하지 못하고,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한 선생이 갖는 무기력에 대한 안타까움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 아들의 추천으로 가족 모두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봤습니다. 내용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고,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기에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장면 장면에서 평소 가지고 있던 영재교육에 대한 안타까움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흥미와 더불어 깊은 감정몰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영재교육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영화로 재해석하고자 합니다.

 

 영국 정부에서는 독일의 암호 애니그마를 해석하기 위하여

앨런 튜닝을 포함한 각 영역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전문가들을 비밀리에 모집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하루하루가 실패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앨런 튜닝은 남다른 접근법으로 암호를 해석코자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적합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조안 클라크를 선발하지만 여성차별적인 시대적 아픔으로 팀원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는데 앨런 튜닝의 집념으로 극복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영재교육원의 선발방식은 관찰추천제로 하고 있지만 지나친 객관화의 폐단에 따른 현장 선생님들의 부담가중과 영재학생과 영재교육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학교 부적응 아이들은 아예 제외되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농산어촌 지역의 소외된 지역-읍 외곽지역-에 살고 있는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이 지역교육지원청의 영재교육원에 응시하고 싶어도, 영재교육에 무지한 부모들과 지리적인 거리를 극복할 통학방법이 없어 영재교육 대상자에서 원천적으로 제외되고 있습니다.

 영재교육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선발하여 공부시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아이들을 선발하여 창발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모범적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쉽게도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계절의 변화에 무심한 아이, 예의가 부족한 아이 등도 많습니다. 물론 문화적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에도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다문화 가족의 아이중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앨런 튜닝처럼 특정한 영역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아이들을 제대로 뽑기 위해서는 객관화된 관찰추천제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영재강사에게 선발권을 부여하여 선발 캠프를 통하거나 단위학교에 1명 이상의 영재선발 전문가를 양성하여 배치한 후 이분들에게 추천권한을 부여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추천과정에 학부모들의 참여를 보장하여 투명성을 확보하고, 이해부족에 따른 오해를 해결하기 위해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도 개최해야 합니다.

  앨런 튜닝이 조안 클라크를 참여시키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여 해결한 것처럼, 교육청에서도 선발된 영재학생들이 어려움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통학문제를 비롯한 걸림돌을 제거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특히, 다문화, 장애아이들이 선발과정이나 학습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남다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영재교육의 교육과정은 문제해결 중심이어야 합니다. 심화로 포장한 속진개념의 지식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과정의 입시학원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놀이나 체험학습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일반적인 관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앨런 튜닝의 팀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암호를 해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영재교육원의 교육과정은 지식전달만이 아니라 영재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고차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다양한 문제해결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앨런 튜닝이 세계적인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영재학생들의 능력으로 주변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 중심의 교육과정도 바람직 할 것입니다. 1940~50년대 미국 시민단체들의 캐치프레이즈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가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와 일맥상통합니다.

 영재교육원은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스펙을 쌓는 곳이 아니라, 인류를 괴롭히는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사회 참여형 창발적 인재를 양성하는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앨런 튜닝은 학창시절에 친구들로 부터 심각한 왕따를 당하

지만 친구들이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어른이 되어서도 인간관계 형성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자신의 재능을 펼치는데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영재교육에서 인성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영재성이 있는 많은 학생들이 인간관계 형성을 비롯한 사회적 규범을 익히고 따르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러한 어려움들이 학창시절에는 집단 따돌림이나 학교폭력으로 나타날 수 있고, 어른으로 성장한 후에는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을 탓하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비극적으로 세상을 마감합니다. 앨런 튜닝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역사속의 천재들이 약물중독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최악의 경우는 뛰어난 능력과 삐뚤어진 가치관이 결합하여 사회악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범죄자들 중에 비범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학교와 영재교육원에서 능력에 맞는 인성을 기르기 위한 '창의·인성' 교육과 '리더십 교육'을 강조하고 있지만 쳬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비중도 적어 많은 아쉬움이 있습니다.더불어 연구할 수 있는 인격형성과 인류애를 강조하는 교육내용을 체계적이고 비중있게 다루어야 합니다.

 

 영재교육은 특수교육처럼 개인의 행복추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사회에 부적응하여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는 성취하지 못한 영재-미성취영재-들을 예방하기 위한 영재교육이, 수단적이고 목적적인 영재교육 즉, 잘 키운 한 영재가 사회와 나라를 발전시킨다는 논리보다 앞서야 합니다.

 영재들도 장애아들과 같은 특수한 경우입니다.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장애아를 방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보교육자들 중에는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을 그냥 놔 두어도 알아서 성장하고 발전한다고 오해하여 영재교육에 인색한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오해입니다. 파악되지 않는 많은 영재아이들이 사회에 부적응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영재강사를 하거나 영재교육에 관련이 있는 선생님들 조차도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은 그냥 두어도 성장하고 발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재 영재선발 제도가 잘못되어 공부잘하는 아이들 중심으로 영재교육원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이 연장되어 정상적으로 선발된 영재성이 있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강사도 있습니다. 전문성과 열정보다 승진가산점이 우선되어 나타나는 치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앨런 튜닝이 학창시절에 올바른 영재교육을 받았다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수학적 재능에 의한 학문의 발달과 인류에게 주어지는 생활의 편리는 덤이었을 것입니다.

 

 현재의 영재교육에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폄하하거나 비난하고자 함이 절대 아닙니다. 특수교육과 비교하여 시샘하거나 지원을 줄여서 영재교육에 투자하자는 취지는 더욱 아닙니다.

 다만 한 선생으로서 그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쳐다볼 수 밖에 없는 무기력에 애간장이 타고, 지금이라도 교육행정을 펼치는 분들이 그 방향을 바로 잡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울러 영재교육을 국가적인 목적이나 수단으로 접근하지 말고 개인의 행복추구로 접근하여 앨런 튜닝과 같은 비극적인 영재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삽인된 사진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홍보 홈페이지에서 가져 왔습니다. 상업적인 사용은 홍보 홈페이지를 통하여 문의하시고 사용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