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리더십

왜 '나'여야 하는가?

멋지다! 김샘! 2016. 1. 25. 09:38

  2월은 학년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학년 배정과 업무분장으로 바쁜 달입니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선생님들의 선호와 능력을 많이 참고하여 학년과 업무를 배정하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제로섬 같아서 불만은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인사위원회를 올바르게 구성해서 합리적으로 결정하자는 케케묵은 주장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위원회를 구성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관리자의 교육관만 문제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들의 교육관도 문제의 여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왜 내가 그 학년을 맡아야만 합니까?
  왜 내가 그 업무를 해야 합니까?
  그 학년과 그 업무가 나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게 합니까?
  그 학년과 그 업무가 선생님으로서의 나의 강점을 부각시킵니까?
  아니면 그 학년과 그 업무가 그냥 편하기 때문입니까?
  그리고 나의 이득을 위해 필요한 학년과 업무이기 때문입니까?

  편안함을 쫓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나무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생인 나 때문에 아이들이 피해를 보면 안 되니까 편안함을 선택할 수 있는 선생으로서의 능력은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편안함에 의한 선택이 다른 동료 선생님들에게 합리화됩니다.
  나의 이득을 위해 필요한 학년과 업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득이 합리화될 수 있으려면 선택한 학년과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이득을 위한 선택이 동료 선생님들의 지지를 얻습니다.
  하지만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학교 구성원들과의 소통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편안함과 나의 이익만을 위한 선택으로 동료 선생님들의 희생시킨 것도 당당하지 못한데, 나의 편리와 무지를 감추기 위해 관리자를 포함한 학교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아집을 피우는 것은 나 스스로 잘못된 선택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관리자를 포함한 동료 선생님들이 나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회피하면 나의 아집이 작동한 것입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학교의 올바른 성장과 발전을 위한 관리자의 교육관을 갖고 있다면 선생님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학년과 업무 배정을 관리자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면 관리자가 그리는 학교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외형적인 그림은 그릴 수 있어도 학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과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가까운 존재는 선생님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학교생활이 괴로운데 어떻게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업무분장과 담임 배정 권한을 선생님들과 나누십시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가장 즐거웠던 학교는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을 선생님이 결정하도록 한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학교 운영의 기본 원칙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여 선생님들의 현명한 결정을 도운 관리자가 있었을 때였습니다. 혹시 선생님들이 인기영합적으로 편암함만을 쫓아 결정할 것이라고 미리 속단하여 선택의 권한을 선생님들에게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면 대한민국 선생님들의 지성을 무시하는 엄청난 편견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선생님들을 신뢰해야만 관리자가 그리는 싶은 아름다운 학교 그릴 수 있습니다.
 
  그 학년과 그 업무가 내가 해야 한다면 왜 '나'여야만 하는 이유가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학년과 업무 분장을 힘의 과시가 아닌 학교와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과 발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관리자라면 결정의 권한을 선생님들에게 부여하십시오. 그것이 관리자로서의 왜 '나'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에 나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학년과 업무가 있습니다.
  경청과 소통으로 왜'나'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실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