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커 몇 개면 되는데...
과학실 리모델링 공사를 했습니다.
노후화된 과학실이 불만이었는데 좋았습니다.
여름방학 중에 공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방학이 끝 날 즈음 학교에 가보니 실험기구 정리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언제 하지?'
개학을 하루 앞둔 날에도 그대로였습니다.
담당선생님에게 전화로 물었습니다.
개학날 오후에 선생님들과 함께 할 것이랍니다.
제안을 했습니다.
'내가 과학 전담이니 개학날 두 시간 정도 시간을 주면 아이들과 실험기구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아이들이 실험기구 이름과 다루는 방법을 많이 모른다.'
'가르쳐 주면서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분류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보관함에 실험기구 이름만 붙여 달라.'
'선생님들과 의논해서 결정해 주세요.'
개학날 아침에 내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교감, 교장선생님에게 계획을 이야기하니 좋은 방법이라며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보관함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3~4교시에 아이들만 내려 보내겠다고 합니다.
마침 협의회 시간이 있어서 이름표를 붙여 달라고 재차 요구했습니다.
오후에 선생님들과 같이 할 것이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과학 실험은 비커 몇 개면 되는데' 아이들이 과학실 실험 기구를 모두 알 필요도 없고 다루는 방법도 몰라도 된다는 말투입니다.
어이가 없어서 조용히 일어섰습니다.
'초등학교 과학 실험은 비커 몇 개면 된다.'
1년 6개월 경력의 신규나 다름 없는 교사의 거침없는 말입니다.
이어서 '빨리 정리해야 수업을 빼 먹지 않는다.'라고 확인 사살을 합니다.
'선생님들이 원하는 수업을 보장하기 위해 교감되기로 마음 먹은 나인데...'
'수업은 내 자존심인데 내가 수업하기 싫어서 실험기구 프로젝트를 한다.'
'참!...'
이 신규 교사의 주변에 어떤 선생님들이 있을까요?
이 신규 교사의 미래 모습은 어떨까요?
짐작합니다.
수업에 대한 열정도 없고 가르치는 전문지식도 부족할 것입니다.
수업보다 실적을 남기는 일에 몰두할 것입니다.
부당한 권위 앞에 고개 숙이고 뒤돌아서서 원색적인 비난할 것입니다.
동료 교사의 조언은 무시와 건성으로 흘릴 것입니다.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새로운 대안 찾기는 거부할 것입니다.
당장 아이들이 좋아하고 쉽게 성취하는 교육활동에 뿌듯해 할 것입니다.
얇은 지식으로 동료 교사의 교육활동을 엉뚱하게 평가하고 비난할 것입니다.
물질에 현혹된 싸구려 생활 지식으로 소통과 공감을 방해하는 편 가르는 학교 문화를 만들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빠른 눈치와 아부성 행동으로 긴 생명력을 유지할 것입니다.
열정적인 동료 교사를 구경만 해 놓고 '옛날에 다 해봤다.'며 자신이 했다고 착각하며 살것입니다.
편협한 사고에 의한 개똥철학으로 학교에 대한 끊임없는 오개념을 생산할 것입니다.
미움받겠습니다.
학교를 놀이터로 착각하는 교사에게 미움받겠습니다.
수업 시간만 때우는 교사에게 미움받겠습니다.
다른 교사의 열정과 전문성을 흠집내는 교사에게 미움받겠습니다.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보다 실적을 우선하여 수업을 희생시키는 교사에게 미움받겠습니다.
소통과 공감을 방해하고 편가르는 학교 문화를 선도하는 교사에게 미움받겠습니다.
싸구려 지식으로 동료 교사를 난도질하는 교사에게 미움받겠습니다.
학교의 변화를 방해하는 교사에게 미움받겠습니다.
앞에서는 아부와 아첨으로 뒤에서는 근거없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교사에게 미움받겠습니다.
공개수업에만 '쇼'하는 교사에게 미움받겠습니다.
한방 제대로 얻어 맞았습니다.
교감이 되어 해야 할 일이 더욱 뚜렸해졌습니다.
반성도 합니다.
내가 수업을 하기 싫어하는 교사인가?
왜 그렇게 보였을까?
수업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