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리더십

투사[鬪士]가 되다.

멋지다! 김샘! 2017. 9. 24. 18:31

영재교육을 좋아합니다.

영재교육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공부 잘하는 아이를 더 공부 잘하게 하는 교육이 아닙니다.

머리 좋은 한 아이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머리 좋은 한 아이에게 투자하는 교육도 아닙니다. 

 

어떤 분야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있습니다.

다행히 이 아이들이 그 재능을 잘 발현시키면 좋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아이들 중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상 행동을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반사회적인 인간으로 성장하여 큰 충격을 주기도 합니다. 

영재교육은 이런 아이들을 행복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입니다.

인간의 행복추구와 관련된 교육입니다. 

 

초창기의 영재교육은 힘들었습니다.

이 힘듬을 보전하기 위해 영재교육원 담임에게 승진가산점이 생겼습니다.

반대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강행되었습니다.

담임을 두 번하고 나니 담당 장학사와 주변 동료들이 점수를 다 채웠다면 영재교육원에서 빠져주기를 바랐습니다.

가산점을 받을 교사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버텼습니다. 버틸 때까지 버티고 싶었습니다. 나보다 훌륭한 강사가 있으면 스스로 빠질 수 있지만, 해외 전문연수와 영재 리더십 연수, 영재학생들을 가르친 경험 등을 비교하면 영재강사를 희망하는 교사들은 나를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영재교육원 강사 협의회에서 교육장까지 나서서 노골적으로 빠져주기를 바랍니다.

본인이 영재교육원 원장이면서 치졸한 방법으로 영재교육원을 흔들었습니다.

수료식이 있는 날 나에게 교문에서 주차 관리와 방문객 안내 역할을 맡깁니다.

이 업무가 필요 없을뿐더러 초·중등 강사를 합쳐서 나만큼의 경력과 능력에 의한 신뢰성을 가진 강사가 없었기 때문에 나를 수료식장 밖으로 내몰 명분은 없었습니다.

참았습니다. 참고 참아서 영재교육원 강사로 끝까지 남겼다고 다짐했습니다. 

 

영재교육원 회식이 있었습니다.

담당 장학사가 뜬금없이 나에게 투사[鬪士]적인 삶을 살지 마라고 합니다.

기가 차고 말문이 막혀 나의 시간이 정지하는 사이 전교조 이야기도 하며 말도 안 되는 쓰레기를 뱉습니다.

아주 감정적인 단호함과 큰 소리로 대항했습니다.

옆에 있는 선배이자 동료들은 미소까지 머금고 구경만 합니다.

영재교육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두 인간이 본인들에게 줄 서는 교사를 영재강사로 선발하기 위해 동료에게 온갖 모멸감을 줘도 도움은커녕 위로 한마디 없음을 넘어 두 인간의 편에 서는 것을 보고 영재교육원의 앞날을 예견했습니다. 

 

10년이 지난 학교의 나쁜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글을 쓰며 실천하는 투사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교감을 하는 한 사람이 어느 정치인의 죽음을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어느 정치인의 죽음에 대해 축척된 객관적 사실을 어느 정도만 알고 있어도 할 수 없는 말이었고,  더 나아가서 개인의 나약한 심성에 의한 죽음으로 귀결시키는 것에 너무 기가 찼습니다.

큰 소리로 단호하게 반박했습니다. 죽음으로 몰고 간 객관적 상황과 사실을 열거하고 검찰과 언론이 가짜 정보로 국민을 속이고 선동한 결과임을 분명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보고 뼛속까지 '누구빠'라고 합니다. 옆에 있는 동료도 강하게 동의하고, 어떤 동료는 정치 이야기하지 말자고 합니다. 

화가 났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교감은 교사들에게 꽤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위입니다.

어떤 교사에게는 교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실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위치의 교감이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특정 이념을 맹신하여 가짜 정보와 뉴스를 확산하는 태도로 교감의 수준이 얼마나 떨어졌는 지를 알 수 있어서 서글퍼고 부끄러워서 더 화가 났습니다.

학교 협의회 시간이었다면 녹음하여 사회적 판단에 맡길 수 있었지만 사적인 자리였고 눈치 빠른 동료가 급하게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정치와 관련된 우발적인 상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연히 유사한 문화가 존재합니다.

지식과 인식의 부족, 사회와의 단절된 삶에 의한 정보 취득의 한계와 편협된 판단, 지위가 보장하지 않는 만용과 업신여김이 몸에 배어 올바른 교사에게 본인의 잘못을 덧씌우는 부끄러운 문화 엄연히 존재합니다.

투사적인 삶을 포기 못하는 이유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나쁜 교사로 낙인찍히는 것이 불편합니다.

하지만 연대하는 동료 교사들이 많아지는 희망적인 상황으로 선한 가치를 느낍니다.

그러나 투사가 된 나쁜 교사의 삶은 달갑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