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6일
긴 금요일을 마치고 매운 닭 시켜서 소주 가볍게 하니 잠이 왔다.
술 취한 친구의 전화 소리에 잠에서 깨어 한참을 통화했다. 아마 내일 전화 올 것이다. 어제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그리고 늦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나와 똑같다. 미안한 줄 알면서 전화할 데가 없어서 평소 생각은 나지만 할 말이 없어서 머뭇거리다가 술의 힘을 빌려서 안부 전화하는. 알고 보면 우리는 술의 힘을 빌려 마음을 털어놓는 참 나약한 존재다.
친구야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다. 네 전화 반가웠다.
비 온 뒤 또 쌀쌀한 날씨다. 교통봉사를 하시는 녹색어머니회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이번 주는 오늘 교장선생님과 처음 만나는 밀린 이야기가 많았다.
봄꽃 구입, 역사관 마무리 작업, 학생 공모에 관련된 내용, 음수대 설치 의논, 독서교육 지원 활동, 시 지원 방과 후 활동, 연구 교사 공모, 학원차를 이용하여 통학하는 아이들을 위한 안전 관리 철저에 관한 공문 발송, 특수학급 컨설팅 후 특수학급 이전 문제 등 꽤 오랜 시간을 의논했다.
말미에 어제 특수학급 교사와 나눈 이야기를 교장선생님께 전했더니 놀이 시간에 모여서 오해를 풀자고 하셨다. 놀이 시간 전까지 공문을 처리하고 교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여 특수학급에 얽힌 오해를 많이 해소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12시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교장선생님과 협의된 내용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처리하고 담당 교사가 할 일은 오후에 전달하기로 했다.
12시 30분에 학부모회 대표들과의 간담회가 있어서 약속된 장소로 갔다.
학부모회 총무가 사회로 교장선생님의 2018학년도에 달라지는 환경과 교육과정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 나의 인사가 있었다. 아이들과 학교의 느낌을 담백하게 전달하고 아이들의 즐거운 학교생활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교감이 되겠다고 했다.
학부모들의 의견을 들었는데 의외의 이야기가 많다.
올해 우리 학교는 흔히 말하는 소풍 대신 1학기 학년별 수영체험, 2학기 빙상체험을 하는데 소풍을 가면 좋겠다고 했다.
운동회와 학예회를 대신하여 아이들과의 학습활동의 결과를 공유하는 배움 축제를 1, 2학기 각 1회씩 가지는데 학부모들은 운동회와 학예회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결론은 협의를 한 후 방법을 찾자고 했지만 의외였다. 나는 소풍, 운동회, 학예회의 폐단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데 그쳤다.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우리 교육의 변화가 더딘 것이 비단 학교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과 발달보다 부모님들의 향수를 달래기 위한 학교 교육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등교 시간에 교직원 차량, 급식차량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교문이 복잡하다는 이야기, 녹색어머니회 사기 진작을 위한 활동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었다. 녹색어머니회 사기를 진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부모님들이 많이 참여하여 아이들의 도움 없이 교통봉사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참여도 하지 않고 사기 진작을 운운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권력 폐단인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진 자가 아랫사람에게 어깨 두드리는 짓거리를 하기 위함인 것이다. 화가 났지만 조리 있게 현재 부모님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으니 많이 지원하셔서 아이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자고 했다.
그 외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아이들의 일방적인 이야기에 의존한 것이 많아서 그렇지 않으니 확인해 주기를 바랐다.
특수학급 개별화교육협의회가 있어서 인사를 했다.
우리 학교는 특수학급과 일반학급이 나란히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과 훌륭한 선생님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여 행복한 학급을 만들어 보자고 말씀드렸다.
오늘은 교무실을 꽤 비워서 밀린 공문 처리가 많다. 내용을 확인하고 기록하고 교장선생님과 협의된 내용을 담당 교사에게 설명하고, 한숨을 돌리는데 여러 선생님들이 협의를 요청해 오셔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내가 모르는 내용도 있어서 다음 주에 내용 파악을 한 후에 다시 협의하기로 한 것도 있다.
술 한 잔이 절로 생각나는 금요일이다.
일기를 쓰기 위해 수첩을 펼쳐보니 못다 한 일이 몇 가지 있다.
모르겠다. 주말은 밀린 책 좀 보고 무조건 놀고 보자.
#교감일기
#나쁜교사불온한생각으로성장하다 / 김상백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