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憂慮]
6.13 선거를 통하여 새로운 교육감들이 선출되었습니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의 압승이라고 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진보에 가까워서 이번 선거의 결과가 반갑습니다. 반가움의 바탕은 단순히 진보 성향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새로운 기대입니다. 이 새로운 기대는 보수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에도 유효할 것입니다.
학교 구성원들의 고유한 역할을 존중하고 상호부조의 학교 문화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학교장이 일주일에 3시간 이상 수업을 해야 된다. 어떤 학교에서는 교사들끼리 수업을 나누다 보니 3시간이 남는데 교감이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보고 들었습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교육 활동을 관리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성향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또 다른 학교 관리자는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으로 학교 구성원들을 힘들게 한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수업을 3시간 이상하는 교장이 결정을 독선적으로 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수업을 하지 않는 교장이 결정을 민주적으로 하면 이 교장은 어떤 교장입니까?
학교 구성원들마다 역할이 다릅니다. 그 역할을 무시하고 어느 한쪽의 요구로 기울어진 정책은 새로운 갈등을 유발합니다.
3시간 수업이 남는다고 교감에게 하라는 접근이 아니라 교육과정 운영 전반에 대한 협의회나 워크숍을 관리자와 함께해야 합니다. 협의 과정에서 관리자가 수업을 해야 된다면 기계적으로 몇 시간을 맡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영역을 통째로 맡아서 계획부터 평가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전제조건은 현재 처한 학교의 상황입니다. 관리자가 수업을 해야 된다는 것만 강조되면 관리자가 해야 될 역할을 수행하지 못해 부작용이 생깁니다. 수업도 제대로 안 되고 고유한 역할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학교의 주요 교육활동도 관리자를 비롯한 몇 사람에 의해 결정할 것이 아니라 해당되는 학교 구성원들의 참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합니다. 관리자는 이 참여에 의한 결정을 단순한 존중이 아니라 시행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은 교사이고, 아이들의 가정생활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은 가족들입니다. 이분들의 참여에 의한 결정이 있어야 제대로 된 아이들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고유한 역할을 무시한 역할론을 경계하고, 역할에 대한 교육적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고 무섭게 깨달아 함께 실천하는 상호부조적 역할론을 기대합니다.
부정할지는 모르겠지만 교육감은 정치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정무적인 선택이 필요하고 주요 정책을 교실 현장에 오해 없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전문가 그룹, 동호회, 연구회, 응원 부대 등의 지원 부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지원부대가 자기들만의 우쭐한 전문성을 앞세워 교실과 교사를 지원하는 역할보다 이끄는 역할에 치중한다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지원 부대보다 일찍 폭넓고 깊게 뿌리내린 전문성 높은 교사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육이 그나마 지금과 같은 자리를 지키는 것도 이런 교사들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사들을 섣부르게 포용하러 하거나 당연하게 이끌려 한다면 정말 주제넘는 행동입니다. 이런 교사들을 행정적으로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지원 부대의 역할이 있어야지 자신들이 이런 교사들의 역할을 빼앗아 지원 부대를 자처하는 것은 권력을 짊어진 오만입니다. 더 나아가 권력과 유착하여 지원 부대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독차지하는 것은 권력형 비리에 해당됩니다. 진보가 가장 경계해야 되는 부분입니다.
교육감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응원 부대도 있습니다. 응원 부대가 퍼나르는 홍보량이 많을수록 교육감의 인기는 높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홍보는 정확해야 합니다. 특히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부분은 더 그래야 합니다. 과학관, 수학체험관, 도서관 많이 만들면 논리적인 사고와 지식의 결합으로 삶이 풍성해 질 것입니다. 하지만 수학 포기자가 생기지 않는다와 같은 학력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수학, 과학, 국어 점수 높이려면 수학과 과학 문제 많이 풀고 국어 점수를 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독서 활동을 충실히 해야 합니다. 논리적이고 사고와 독서를 즐기는 삶을 지향하는 것과 학교 공부를 일치시키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지나친 비약입니다. 선택의 문제로 남겨야 되며 어떤 선택이든 행복으로 이어지는 정책을 기대합니다.
작은 파시즘과 파시스트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관료주의를 청산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관료주의에 빠진 이들이 있습니다. 이전의 관료주의는 위계에 의한 것이어서 더럽지만 출세를 위한 자극제는 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출현한 관료주의는 위계가 무시된, 관료가 아닌 작은 파시스트들이 관료주의를 표방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정서상으로 용서가 안 되어 훗날 응징을 부릅니다.
어떤 교사들의 연구회와 동호회는 그들만이 교육감의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명감으로 본인들의 주장과 실천이 무조건 옳다는 확고부동한 태도를 견지합니다. 교육감의 정책은 학교 현장에서 ‘씨~씨!’하면서 충실하게 수행하는 유연한 보통의 교사들에 의해 실행됩니다. 당신들의 상징성이 확장성을 가지려면 폐쇄적인 특권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당신들의 상징성이 운동이 되려면 권력을 동원하는 하향식 변화가 아니라 당신들의 치열한 투쟁이 감동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상향식 의사결정을 주장하면서 투쟁하지 않고 권력에 하소연한 하향식 변화로 힘을 과시하는 것은 작은 파시즘에 불과합니다.
작은 파시즘과 파시스트들의 청산을 기대합니다.
기대가 우려[憂慮]로 변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일개[一介] 가 전국의 교육감을 응원합니다.
#교감일기
#나쁜교사불온한생각으로성장하다 / 김상백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