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간섭

나는 청렴하지 않았다.

멋지다! 김샘! 2018. 12. 25. 18:17

고위공직자 개인별 청렴도 평가 결과를 개인 이메일로 알려왔다. 대수롭지 않게 결과를 확인했다. 충격이었다. 도내 초등 교감의 평균 청렴도가 0.02만 채우면 완벽한 청렴도라는 것, 나의 청렴도가 평균이 많이 미달된다는 것, 평균에 많이 미달되어도 중상의 청렴도라는 것이 충격이었다.

청렴한 생활은 나의 이상이고 현실과 일치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살아온 궤적을 보면 청렴과 먼 생활도 있었고 저런 게 선생 하냐라는 소리를 어찌 되었건 들은 적도 있었다. 지금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 당시에는 잘 알고 지냈고 많이 의지했던 선배 교사가 만들어 준 기회로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교감으로 승진할 것이라는 생각은 1도 없었다. 그래서 승진에 대한 내적 갈등도 없었다. 그러나 학교를 생산적인 공간, 다양성이 머무는 공간, 창의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은 가지고 있었다. 꿈을 현실로 바꿀 방법을 찾지 못하다가 리더십을 접하면서 학교의 변화는 수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바꾸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수업을 바꾸면 학교가 바뀐다가 아니라 학교 문화를 바꾸면 알찬 수업은 저절로 된다는 논리였다. 지금도 변함이 없어서 수업을 지원하는 학교 문화에 초점을 두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때부터 청렴한 생활을 이상으로 삼았다. 학교 문화를 바꾸기 위한 실천적 방법으로 청렴한 생활을 선택했다.
그리고 리더십으로 학교를 분석하기 시작했는데 질문법, 뇌과학, 문화, 정치, 역사, 철학을 거쳐 지금은 문학으로 학교를 바로 보고 있다. 선생님들을 바라볼 때도 내 나름의 인문학으로 바라본다.

교감이 되어서 내가 비난하고 비판했던 교감들의 생활과 반대로 했다.
교직원들에게 처음 인사를 할 때 짧게 했다. 근무시간을 잘 지켰다. 1학기 내내 학교 앞 횡단보도 교통봉사를 도맡아 했다. 공문 틀린 것 특별한 것 아니면 내가 수정했다. 교사들끼리의 알력 부담되었지만 중재했다. 담임교사가 벌려 놓고 책임지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것 해결했다. 객관적으로 책무를 다하지 않는 교사에게 시정을 요구했더니 교감이 예의 없이 말한다고 핀잔을 주는 교사 앞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이 교직원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때 완충지역을 만들었다. 교직원협의회에서 객관적인 사실만을 이야기했다. 내가 잘못한 경우가 있었을 때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과했다. 놀이 시간을 비롯한 쉬는 시간에 아이들 곁을 서성이며 살폈다. 선생님들이 어려움을 호소할 때 감정적으로 같이 공감하며 내가 도울 방법을 찾아서 실천했다. 친화회에 대해서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을 동안의 음식값과 술값은 전액 계산했다. 간혹 아이스크림, 커피 한 잔이라도 얻어먹은 경우가 있으면 반드시 갚았다. 갚는다고 생색내지 않았다. 행정실에는 흔해 빠진 인스턴트커피였지만 교무실에는 없어서 내가 샀다. 맛있는 커피도 수시로 사 두었다. 그 커피 마시는 교직원들에게 생색내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하고 싶은 교육활동 방해하지 않았다. 학교 밖에서 우리 학교 선생님들 욕하지 않았다. 나와 접근법이 다른 교장 선생님과 표면적으로 갈등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도 많았지만 교직원들이 힘들 것 같아서 표현하지 않았다. 내가 쓰는 일기에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아이들과 교직원들에게 내가 먼저 인사했다. 간혹 복무 시간이 맞지 않은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면 그냥 웃었다. 반복되는 선생님에겐 일대일로 이야기했고 전체적으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딱 한 번 직원협의회에서 이야기한 적 있다. 교감의 업무 다른 교직원에게 넘기지 않았다. 위계 없는 교직원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충고했다. 교원능력개발평가의 서술란에 뜬금없이 웃어라고 적은 황당함에도 내색하지 않았다. 적어도 선생님들은 공과 사는 구분한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렇다. 평가지표로 객관적으로 평가할 능력은 충분하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렇다. 간혹 누군가 나의 의도, 사실과 다르게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에 의연했다. 대통령도 욕을 얻어먹는데 교감이 뭐 대단한가. 재미없는 학교에서 교감 욕하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이것마저 없으면 얼마나 재미없겠나. 간혹 사적인 자리가 되면 나도 교직원, 교육장, 교육감, 대통령 욕한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인신공격, 창작한 비난은 하지 말자고 당부한다.

청렴도 설문조사를 한다는 공문이 왔었다. 안내만 했다. 전화가 왔었다. 우리 학교 참여도가 낮으니 참여를 독려해달라고 했다. 많이 참여해달라고 메신저로 알렸다. 어떤 교감은 교직원들에게 정성껏 해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으면 결과에 실망한다고 했다. 무시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떤 결과든 나의 청렴함에는 변함이 없다는 굳건한 생각을 했다.

이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굳건한 생각이 흔들렸다. 몇 시간 동안 흔들렸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흔들린 마음을 표현했다.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그럴 리가 라는 얼굴이었다.
몇 시간 동안 흔들리는 마음 다잡았다. 흔들린 마음을 표현한 것이 후회되었다.

여전히 충격적이다. 도내 초등 교감들의 평균 청렴도가 완벽에 가깝다는 것이.
내가 평균을 많이 깎았다. 미안합니다.

나는 청렴하지 않았다.

#교감일기
#나쁜교사불온한생각으로성장하다 / 김상백 저
#내수업을간섭하지마라 / 김상백 저
#착하게사는지혜 / 김상백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