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화회에 대한 회상과 지금 생각
1. 처음 발령을 받은 학교에서 예상하지 못한 퇴직을 한 주무관이 있었다. 정년퇴직이나 명 퇴직이 아니어서 친화회 임시회를 통하여 성의를 표했다. 그런데 퇴 하는 주무관이 똑같은 퇴직이니까 임시회에서 결정한 것을 수용할 수 없으니 회칙에 정해진 정년이나 명예퇴직대로 처리해 달라고 했다. 한동안 옥신각신하며 시끄러웠다. 결국 주무관의 주장대로 처리되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서 친화회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봇물처럼 터졌다. 친화회를 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아니면 하고 싶은 사람만 하라고 했다. 선배 선생님이 친화회의 가치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모두 이해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주장을 철회했다.
얼마 뒤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시골집에서 장례를 치렀는데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친화 회장님이 조문을 오셨다. 나의 사회생활 첫 조문객이었다.
2. 제법 큰 학교로 옮긴 학교에서는 친화회 회식도 제법 있었고 방학을 시작할 때 1박 2일 여행을 갔는데 거의 참석했다. 분위기도 좋았다. 동학년이 아닌 학년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3. 그다음 학교에서는 친화회가 정말 비민주적이었다. 교장이 친화 회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정말 못났게도 본인은 교장인데 회장이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환영회, 송별회, 회식을 할 때면 교장이 마음대로 했다. 심지어 성희롱, 폭언을 서슴지 않다. 지금 생각해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그 당시 나는 이해되지 않아서 여러 번 이의를 제기했더니 나의 이야기에는 대꾸를 하지 않았고, 많은 선생님들이 학교 분위기 흐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 이유로 친화 회장과 교장의 갈등이 심했다. 친화 회장은 대학교 같은 과 선배님이었는데 고집이 있는 분이었다. 교장의 입맛에 맞게 적당하게 넘어갔으면 교무 하면서 근평 받아 승진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내가 보기도 안타까워서 외람되지만 적당하게 갈등 풀어서 근평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했다. 정말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선배님은 그렇게 하지 않다. 다른 학교로 가서 교무 하면서 근평 받아 승진했다.
4. 교장 선생님이 모든 것을 솔선수범하는 학교에서 근무했다. 분위기 좋았다. 직원 여행과 회식 시간이 즐거웠다. 그런데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특정한 교사를 편애하는 것은 너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국 친회 주관 직원 여행 중 노래방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큰일이 아닌데 내가 너무 과민 반응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특정한 교사와 다르게 나를 무시하는 태도에 분노했다. 하지만 분노를 표출한 방법은 지금도 후회한다. 친화 회장을 하는 교무 선생님이 정말 재미있게 사회를 보셨다. 내가 친화 회장이 되면 저렇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실제로 친화 회장을 할 때 같은 이벤트를 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5. 아주 큰 학교에서 근무했다. 여름방학을 시작할 때 직원 여행을 갔는데 버스 두 대로 갔다. 서울에서 아주 좋은 뮤지컬 공연을 보고 저녁을 먹은 후부터 자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숙소를 알려주고 아침 식사 장소만 알려줬다. 끼리끼리 재미있는 저녁 시간을 가졌다. 친화 회장님과 총무님의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다수가 만족하는 직원 여행을 기획한 것이 주요했다. 역시 친화 회장이 되면 회원들의 솔직한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직원 수가 정말 많아서 회식을 하더라도 동학년끼리 앉았기 때문에 다른 학년 선생님들과 교류할 시간이 없었다. 직원 여행을 통해서 다른 학년 선생님들과 제법 어울렸다. 내가 몰랐던 학교의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6. 어떤 학교에서 친화 회장을 했는데 한 주문관이 친화회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극한 이기주의로 애매하게 친화회 행사에는 참여하면서 가입은 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뒤 다른 학교에서도 한 주문관이 친화회에 가입하지 았는데 친화회 행사에도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간혹 불편할 때가 있었다. 업무추진비로 회식을 한 후 경비가 부족할 때 친화 회비로 충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애매했다. 친화회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은 업무추진비만큼만 회식하면 된다고 했고 친화 회원들은 회비를 더 보태서 더 맛있게 먹자고 했다. 이럴 때마다 조정한다고 힘들었다. 갈등도 있었다.
7. 교감이 되기 전의 학교에서 억지로 친화 회장을 했다. 교장이 친화회에 관여하는 일이 많아서 그렇게 하지 말 것을 이야기했고 교장이 부당한 간섭에 대꾸하지 않았다. 회원들의 태도도 못마땅했다. 친화회에 대한 부당한 간섭에 회장이 맞서고 있으면 회장에게 힘이 도는 태도를 취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회식과 친화회 주관 여행을 계획을 수립할 때도 확실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아서 의견을 조정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심지어 겨우 의견을 조정하고 나면 여기저기서 엉뚱한 의견을 내놓아서 당황스러웠다.
친화회는 학교에서 유일한 교직원들의 자치조직인데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교장의 눈치를 보느냐며 항변하고 차라리 친화회를 헤쳐하자고 했다. 여러 회원들이 친화회는 필요하다며 그렇게는 하지 말자고 했다. 어떤 회원은 그래도 친화회 행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마저 없으면 학교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질 것 같다고 했다. 교장의 부당한 간섭을 적당하게 무시하면서 친회를 이끄는 것이 힘들었다.
교감이나 교장이 되면 친회에 절대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8. 교감이 되었다. 환영회를 하는데 교장이 좌지우지했다. 이의를 제기하는 회원들이 없었다. 내가 교사로서 근무한 지역보다 훨씬 민주적인 문화를 가진 지역이어서 다른 기대를 했는데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환영회에서 전입 교원을 대신해서 인사말을 부탁하기에 거절했다. 다른 분이 했다. 그 뒤에도 친화회 행사에서 교감으로서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딱 한 번 나의 주장을 펼쳤다. 약속시간보다 빠르게 친화회 행사를 진행했다. 교장 선생님은 시간에 맞춰 참가했다. 교장이라는 직위를 떠나서 약속된 시간에 하자고 했더니 무시했다. 교장이 인사말을 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친화회 행사지만 기관을 대표하는 분에게 인사말 정도는 허용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친화회 행사를 마칠 즈음에 발언권을 얻어서 속에 있는 말을 했다. 친화회 행사는 정해진 시간에 하고 학교를 대표하는 분에게 인사말 정도는 하도록 하자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 말을 듣지 않고 끼리끼리 이야기하고 있었다. 많이 언짢았지만 그날은 참았다. 다음날 친화 회장에게 조심스럽게 같은 내용을 전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친화회 행사를 할 때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갈 것이라고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친화 회장이 건배 제의와 같은 일을 맡겼지만 모두 사양했다. 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내 마음대로 하는 문화로 해석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친화회 행사 아닌 부분에서도 이런 문화가 눈에 띄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소양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지금도 친화회에 교감으로서 절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늘 교무실에 있는 몇 사람과 친화회의 무용론과 필요성에 대해서 간단한 대화가 있었다. 어떤 분이 우리 학교 친화회 분위기는 좋은데 예전 학교의 부당한 분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친화회를 없애버리는 것은 어떨지를 물었더니 처음부터 아예 없으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어서 만약에 집안에 경조사가 생겼는데 친화회가 조직되어 있지 않아서 화환과 조화를 비롯한 상호부조가 없으면 섭섭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어떤 분은 그나마 친화회 행사를 통해서 서로를 좀 더 이해하게 되는데 친화회가 없다면 지금보다 삭막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오늘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큰 학교의 경우 나와 전혀 관계없는 분의 경조사에 가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친화회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
질문. 친화회의 무용론과 필요성에 대한 결론을 내기보다 먼저 묻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내 집안에 경조사가 있는데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아무 부조가 없어도 섭섭하지 않겠는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조차 없는데 나를 이해해 달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교직원들의 유일한 평등한 자치 조직인 친화회를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지킬 노력을 했는가?
친화회에서 조차 눈치를 보며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 못하면서 다른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을까? 즉, 친화회를 해체하는 것이 민주적인 학교문화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까?
친화회를 해체를 주장하는 교직원에게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아니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동의하는가?
친화회의 해체보다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결론. 작년 학교에 있을 때 장모님이 돌아가셨다. 친화 회장에게 전화해서 친화회 조화와 부의금을 제외하고 개인적인 부의금을 절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로 받아들여서 다시 아주 강조했다. 조화, 친화회 부의금, 교장 선생님 업무추진비에 의한 부의금만 받았다. 많은 회원들이 오셔서 위로해 주셨다. 물론 나는 회원들의 경조사에 개인 부조를 다했다. 그러면 왜 나는 개인 부의금을 받지 않았느냐 하면 나와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이 분들에게 부의금을 되돌려주려면 내가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옮긴 지금에 작년 학교 직원들의 경조사에 대한 연락이 오지 않아서 좋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친화회 경조비를 정할 때 개인적으로 하기 때문에 소액으로 결정한다. 나는 반대한다. 사회 통념에 맞는 적당한 금액으로 정하고 개인 부조를 하지 않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데 가기는 싫고 만나면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지 말자는 주장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소양을 친화회를 지킴으로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을 함으로써 높이자고 주장한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친화회 조차 민주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학교를 민주적으로 바꿀 수 있겠는가?
나의 주장이다.
#교감일기
#나쁜교사불온한생각으로성장하다 / 김상백 저
#내수업을간섭하지마라 / 김상백 저
#착하게사는지혜 / 김상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