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19년 6월 20일

멋지다! 김샘! 2019. 6. 20. 15:40

어떤 선생님이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텃밭에 있는 상추를 학교에 근무하는 어른들이 따서 급식소에 제공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양배추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뜬금없는 소리에 버럭 텃밭의 채소를 급식소에 제공하는 것은 안 되며 양배추는 아직 속이 차지 않아서 수확하면 안 될 것이라고 했더니 주무관님이 수확을 해도 된다고 했단다.
이야기가 다 되었다고 해서 찜찜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라고 했다.
찜찜하고 짜증 난 기분으로 교무 선생님에게 텃밭을 교육적으로 활용해야지 아이들이 심어만 놓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수확도 어른이 해서 급식으로 제공하는 것은 교육적이지 않다고 했다.
잠시 뒤 담당 학년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셔서 아이들만으로 상추를 뜯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환경도우미 분의 협조를 미리 얻었고, 조리사에게 이야기했더니 안 된다고 하다가 본인들이 소독처리와 세척을 해서 제공하겠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오해를 풀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교무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하자마자 교무실로 내려와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당황스러웠고, 예전에 상추를 아이들이 뜯어서 급식으로 제공하는 의견을 영양사에게 물었는데 안 된다고 했고, 학부들이 학교 행사일에 간식을 제공하려 할 때도 급식 사고의 우려가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옳았기 때문에 그대로 수용했다.
그런데 영양사가 본인들이 살균 세척을 한 후 제공하겠다고 했단다.
일관성도 없고, 대체 교감이라는 직위가 학교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 자괴감이 밀려왔다.
예전 같았으면 영양사를 찾아 큰소리로 따졌을 것인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추스르다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험담을 한다는 전제로 아이들이 텃밭의 농작물을 잘 관리하여 수확도 자신들이 해서 소중하게 포장하여 집으로 가져가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했다. 시골 아이들이라 집에서도 흔하겠지만 자신들이 직접 기른 것은 또 다른 의미이고, 그 의미를 가족과 식사하는 자리에 곁들이면 그것이 텃밭교육이 아니겠냐고 다소 거칠게 말했다.
그래도 마음이 진정이 안 되어 서성거리고 있는데 담당 선생님이 내려와서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며 수확한 채소를 포장하여 아이들 손으로 가정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말이 내가 교감이라서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듯하여 싫었다. 그래서 그런 말 사용하지 마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술한 내용으로 이야기했다.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그러면 오늘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를 물어서 이야기가 다 되어 있다고 하니 계획대로 하시라고 했다. 본인 때문에 영양사가 걱정된다고 하길래 영양사에게 다른 말 안 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10시경에 교육지원청에서 2019학년도 반부패, 청렴정책 소통협의회(컨설팅)를 하러 왔다.
화난 마음 누르고 가식적인 미소로 맞이했다.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청렴교육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전달했다.
외부 업자들에게 정당하게 요구할 것은 해야 되는데 갑질 문화 근절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현실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최소한 그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평가한 것에 대하여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공평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컨설팅하는 분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덧붙이면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의 청렴 담당은 교육행정직이 하고 있으나 학교는 대부분 교감이 한다. 오늘처럼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지도점검을 나오면 기분이 좀 그렇다. 담당 장학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학사에게 청렴 업무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행정실장이 청렴 업무를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될 수 없다면 교감은 책임관으로 행정실장은 실무 담당자로, 이게 기분 나쁘면 교장이 책임관으로 행정실장이 실무 담당자로 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는 생각이다.
산불이나 각종 재난은 일어난 후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밖에 없어서 예방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현재의 청렴 정책은 공무원 집단을 준 부패집단으로 규정하여 꾸준히 교육하지 않으면 마치 부패집단이 된다는 논리로 접근한다. 그 방법을 보면 어떤 교육지원청은 세숫대야에 청렴수라는 물을 담아서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손과 얼굴을 씻는 장면을 인증 샷으로 남기는 릴레이 활동을 한단다. 얼마나 비인권적인 행위이냐? 범죄자가 손을 씻는 퍼포먼스와 뭐가 다른가? 나에게 시켰으면 당장 청와대나 국가인권위에 민원을 제기했을 것이다. 부패 공무원에 대한 법령이 존재한다. 그 법령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예방 효과가 있다. 지금까지 고위층에서 비도적 행위에 눈감고 노골적으로 제 식구 감싸고 법령을 느슨하게 적용하여 다 빠져나가도록 해놓고 이제 와서 이런 정책을 쓰는 것에 분노한다.
현재의 청렴 정책은 강한 반감만 일으켜서 청렴 교육을 조롱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나치지 않은 청렴 교육과 엄격한 법 적용만으로도 충분히 청렴할 수 있다. 위에서 모범을 보이시라.

회계점검도 같이 했는데 행정실장이 몇 개 걸렸다며 확인을 받으러 왔다. 교장 선생님이 출장이어서 내게 확인받으러 온 것이다. 걱정할 필요 없는 해석상의 차이, 당장 시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보내드리고 난 뒤 작년에 발령받은 주무관에게 소감을 물어니 몇 개 걸려다며 씩 웃는다. 지적받은 것 고치면 되고 이번 기회에 알았으면 다음에 할 때 제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지적을 받고도 안 하면 문제다라고 했더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행정실장과 주무관의 심성이 참 좋다. 

속 시원하게 말할 곳도 없고 참 외롭다.

#교감일기
#나쁜교사불온한생각으로성장하다 / 김상백 저
#내수업을간섭하지마라 / 김상백 저
#착하게사는지혜 / 김상백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