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의 우리 의식이 걱정된다.-삼 일간의 대화-
지난 금요일 저녁에 고등학교 동기 모임에 갔다. 학연, 지연, 혈연과 거리를 두는 삶을 지향하고 있지만 한 많은 고등학교 시절이었기에 이 친구들과 떠들고 노는 시간이 좋다. 정치적인 성향은 두 친구를 제외하면 흔히 말하는 보수다. 약한 보수당에 가깝다. 그래도 대화는 늘 즐겁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 갈등에 대한 생각들을 알기 위해 간접적인 질문을 던졌다. 큰 아들이 의무경찰로 입대하여 경남에 배치되었는데 지금 받고 있는 의무경찰 훈련을 마치면 최종 근무지가 정해질 것 같으니 경찰 쪽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연고지로 당겨주면 좋겠다고 했다. 앞자리의 친구가 단호하게 "네가 어떤 자리까지 할는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문제 생긴다. 그냥 내버려 두어라!", 그 친구의 대각선에 있던 친구가 "야! 너는 이번 사태를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냐?" 다른 친구들도 하나같이 그런 생각과 행위하지 마라고 만류한다. 일 년 전만 하더라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으면 어느 선배에게 연락하면 해결해 준다며 거들먹거렸던 우리였는데 이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많은 사람들과 언론은 국론 분열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성숙한 시민들에 의한 민주주의 쟁취가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다. 국민의 대표라고 자임하는 분들에 의해 대한민국이 흔들려도 많은 시민들은 행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촛불 혁명부터 많은 시민들이 행동으로 우리가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강조하며 정의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더 고무적인 것은 적극적으로 함께하지 않는, 뜻을 달리하는 시민들도 더 이상 인습을 정의와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성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토요일 저녁에 학교에 있는 두 분과 예상하지 못했던 대화를 했다. 행복학교, 교육감 인사, 승진 관련 이야기들이 뒤섞였다. 술의 힘으로 이야기하는 그분의 말을 술에 취했다고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는 술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기분이 나쁘겠지만 올바른 대화를 하기 위해서 당신에겐 공부가 더 필요한 것 같다. 대화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주제에 대한 공부는 되어 있어야지, 당신이 듣고 싶은 근거 없는 풍문, 의도된 일방적인 주장을 사실로 착각하여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범죄가 될 수 있고 가짜 뉴스를 양산하여 성장하지 못하는 갈등을 끊임없이 양산하는 것이다. 사회 현상이나 제도에 대해서 각자의 생각이 있기 마련이고 그 생각을 표현할 자유도 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주장에 대한 표현을 제한하려거나 폄훼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다양한 표현들이 성숙의 갈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양성, 통찰의 시선이 필요하다. 공부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많이 듣기 싫다는 표정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인사 문제에 대해서도 나도 크게 동의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분들의 과거를 보았다. 현재 우리가 성숙했다고 자부하는 것처럼 현재의 그분들도 성숙했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 성숙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인정하자.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을 중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중용된 이후 그분들은 성장한 모습과 그 자리에 어울리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선거로 심판될 것이다. 내로남불의 논리로 성장을 인정하지 않는 오류에 빠지지 말자고 했다.
다음 날 점심에 전화가 왔다.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실수한 것 없냐고 물었다. 전혀 실수한 것 없고 유익한 시각이었다고 말했다. 몸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일요일. 아주 친한 친구와 취미생활을 하고 저녁을 함께 했다. 그 친구는 교감을 준비하는 교사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민주적인 학교문화와 행복학교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다. 친구는 관리자가 평소에 민주적인 척하다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빵 터뜨려서 학교를 당황스럽게 한다고 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하고 싶은 것 있으면 미리 이야기해주면 알아서 맞춰 줄 것인데 학기말이나 학년말의 워크숍에서 학교 구성원들이 학교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선생님들을 위해서 학교를 민주적으로 이끌어 왔는데 그동안의 노력은 간데없고 비민주적인 교장으로 남았다며 워크숍을 비민주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민주적인 교장인 척하는데 성향을 알고 있는 학교 구성원들은 해가 바뀔수록 교장의 입맛에 맞는 말과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교장은 학교가 민주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자부한단다.
현재의 나의 학교 생활, 이런 상황이 닥치거나 이런 교장이 안 되기 위해서 내가 노력하고 있는 것들을 물었다. 우선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은 그렇지 않다. 민주적인 척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의사 결정하기 전에 미리 의사를 전달하고 선생님들의 결정권과 결정된 내용을 존중하며 만약 법령이나 상식에 어긋나는 결정이면 차분한 논리에 의한 단호함을 보이시고 때로는 나에게 그 역할을 맡길 때도 있고, 내가 교감이 아닌 일 인으로 학교 구성원들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최소화하라고 요구한다고 했다.
나는 척하는 교장이 되고 싶지 않다.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서 필요한 교육활동이나 지원은 스스럼없이 할 것이다. 단 치밀한 의도성이 결여된 즉흥적인 방법은 지양하고 치밀하고 의도적인 방법을 학교 구성원들과 의논하여 결정하고 싶다. 내가 지향하는 행복학교는 학교 구성원들이 생활인으로서 안락한 곳이 아니라 학교 안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학생들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서 힘을 쏟고 창조적인 피로감에 의해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는 학교라고 했다. 무엇보다 그런 학교를 위해서 방향성은 제시하지만 억지로 이끌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가 강제로 이끈 결과를 무수히 보아왔지 않은가? 더디지만 학교 구성원들의 성장과 발달로 학교의 발달과 성장을 이루고 싶다. 그래서 목표가 없다고 했다.
워크숍의 성격상 칭찬보다는 비판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학교보다 비교적 민주적인 우리 학교-대부분의 교육활동이 학교 구성원들의 협의로 결정되는-도 월 모임이나 워크숍에서 비판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런 시간, 교감이나 교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학교 구성원들이 스스럼없이 학교를 비판하는 것 자체가 민주적인 학교로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 아닌가? 왜 깨닫지 못하는지 갑갑하다. 칭찬이 듣고 싶으면 일관되게 꾸준히 칭찬하면 칭찬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 이치고, 꼭 당장 칭찬이 듣고 싶으면 칭찬하는 시간을 만들면 무수한 칭찬이 이어질 것이다. 워크숍 하지 말고 칭찬하는 날을 운영해보라고 했다.
행복학교를 완벽한 학교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라고 했다. 요 근래에 느낀 것이지만 우리 학교는 비교적 행복학교를 잘 운영하고 있지만 일반 초등학교가 갖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런 문제를 어떻게 민주적이고 지혜롭게 풀어나갈까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꾸준히 지향한다고 했다.
삼일 동안 이야기를 나눈 이야기들이다. 학교 안의 우리들이 걱정이 되었다. 사회는 갈등과 비판으로 성장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들의 학교 안은 여전히 수동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뭘 자꾸 해달라고만 하고 스스로 뭘 해보겠다는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작은 실천이 주는 불편함을 상상하여 너무 쉽게 회피한다. 교감이나 교장은 정의를 기반으로 변화하는 사회의 민주화만큼 의식의 민주화가 더디다. 사회의 변화를 학교가 상당하게 따라가지 못한다고 늘 비판받아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제도와 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하지만 삼 일간의 대화로 학교 안의 우리 의식이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함을 실감했다. 그래서 조만간에 제도와 정책의 비판이 아닌 뒤떨어진 의식을 비판받는 학교 안의 우리들이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작금의 상황이 예사롭게만 보이지 않는다.
#교감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