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7일
사일 쉬고 출근하니 막연하게 출근하기 싫었다.
태풍 미탁이 벚나무 터널의 잎을 속아내어 먹구름의 하늘이 점처럼 지나갔다.
그나마 태풍의 매서운 매질을 이겨낸 잎들도 연노란 멍이 들어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다.
계획서가 잘 안 되었던 선생님이 체험학습 계획을 기안했는데 정말 잘했다.
칭찬하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했다.
고의성은 없었으나 부족한 부분이 반복되어 울화가 치밀곤 했었는데 꾹 참고 차분히 알려줬었다.
참고 참기를 잘했다.
이젠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무시당하지 않겠다.
손님 실내화를 습관적으로 싣는 학생들의 수가 늘어나서 지도해 달라는, 현관에 있는 우산꽂이 주변에 우산이 널려있는데 학생들이 직접 정리하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시간이 지난 뒤 우산꽂이를 확인해보니 저학년과 고학년이 확연히 차이 났다. 고학년은 여전했다. 될 때까지 이야기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수용과 조절의 과정이다. 이런 사소한 것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여주지 않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아닌 이기를 위한 나만의 민주주의가 아닌가라는 강한 의문을 갖는다. 본인이 원하는 것, 본인이 즐거운 것만을 쫓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수용과 조절의 과정에 희생과 언짢음이 방출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늘 시끄럽고 아프다. 소란과 아픔을 회피하며 민주주의를 주장하면 안 된다. 유토피아를 민주주의로 착각하고 있다면 당신의 배움이 짧은 것이다. 하찮고 사소한 일상부터 민주 사상으로 실천해야 주변이 바뀐다.
강의를 많이 다니는 선생님이 있는데 어떤 학교에서 강의 날짜를 자꾸 바꾼다. 바꾼 날짜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육상대회 나가서 대교가 힘들다. 교장 선생님이 대교가 되면 출장을 허용했는데 교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니 힘들다고 해서 그 학교와 다른 날짜로 상의하라고 했다. 내가 대교를 하면 좋겠지만 나도 그날 육상대회에 참여하고 싶고, 육상 선수를 인솔하는 선생님 반 대교가 해결 안 되면 내가 들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담임에게 자기 반 아이들 가르치는 것보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담임은 출장 만들어 가고 다른 교원이 대교 하는 것은 비정상이다. 비정상이 반복되면 안 된다.
#교감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