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19년 11월 18일

멋지다! 김샘! 2019. 10. 18. 19:35

비가 또 온다.
쓸쓸하다.

지역 교(원)감단 협의회 출장이 있는 날이었다. 어제 총무에게 사정이 있어서 참여하지 않겠다고 알렸다. 그랬더니 공문에 의한 것인데 무슨 일인지라고 물어서 개인 사정이라는 짧은 한 문장만 보냈다. 내 주장이 옳다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진리고 정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여 실천하는 것도 존중받아야 한다.
교사 시절에 교감이 되면 안 해야 되겠다고 결심한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일과 중에 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출장 신청하여 모인 후 배구하고 장학사들과 저녁 먹으면서 술 먹는 행위도 포함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요즘 이러한 형태는 별로 없다. 전임 지는 워낙 학교 수가 많아서 외부 대형 식당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눈치 빠른 장학사들은 오지 않았다. 그때도 내키지 않았지만 신규 교감들 환영회 자리여서 내가 해당자여서 불편한 마음으로 참석했었다.
지금 지역은 일과 중에 배구하고 저녁에 여러 장학사와 모임을 한다고 교감단 밴드로 알려왔다. 알림을 받고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배구 전까지 참석하고 집으로 가느냐, 배구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저녁 자리는 함께 할까? 배구 끝날 때까지가 출장 시간이니 구경만 하다가 저녁자리에 가지 말까?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어제 출장을 아예 안 가기로 결심하고 총무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교감단 협의회 분명히 필요하다. 일과 중에 하려면 협의회 내용에 맞게 진행하고 토의와 토론이 필요한 경우는 교감대 교감으로 치열하게 해야 한다. 교사에게는 복무를 비롯한 청렴을 강조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예외라는 생각은 청산해야 될 의식이다. 더 이상 이런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고 용서받을 수도 없다. 상식적으로 지위가 올라가면 도덕성과 전문성을 더 필요로 한다. 그 도덕성과 전문성을 기르기 위한 협의회가 되어야 정당한 권위가 발생한다.
모임에 참석하여 이제 바뀌어야 된다고 주장하며 분위기를 확 깨버릴 용기는 있지만 욕만 듣고 변화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용기 내지 않는다. 그리고 뒷감당에 감정 낭비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소신대로 살 것이고 소신 발언할 기회가 되면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어떤 이는 세상을 왜 이렇게 어렵게 사느냐고 묻는다.
습관적으로 굽신거리고, 주저하고, 잘못인 줄 알지만 모두가 그러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해 볼 것 같은 막연한 불안 심리에 편승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본인이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교사 시절에도 비교적 그런 삶을 추구했다. 교감이 되어서 막연한 권력의 누름에 불안하여 잠시 흔들렸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맞서는 사람들, 사회 관습과 치열하게 투쟁해야만 한다. 이런 삶을 살고 싶으니 그런 삶의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조르는 것은 성숙한 시민의 태도가 아니다. 내 주변부터, 내 삶의 방식부터 바꾸려는 내부와의 치열한 토론이 전제되어야 본인이 원하는 삶을 그나마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투덜이의 삶일 뿐이다.

나와 삶의 방식이 다른 분들을 적폐라고 애써 비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행위를 하면서 권위가 서지 않는다고 다른 이와 시대를 탓하는 것은 성장을 거부하는 퇴화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서글프다. 어찌하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 속에서 허우적 되는 내 모습이 아련하여 더 그렇다.

석면 관련 회의를 다녀온 보건 선생님의 강조사항이 있어서 교장 선생님과 공유했다.
장소는 같지만 목적이 다른 선생님이 동행자로 출장을 신청하여 따로 신청하도록 했다.
행정실에서 관리하는 어떤 분의 역할이 미흡하여 행정실장과 의논했다.

사족학교 구성원들 간의 합의로, 참여하지 않는 구성원들의 인격을 침해하지 않는 직원 체육연수에서 하는 배구는 비난하지 않는다. 교감단이 협의를 마치고 협의회 기관의 퇴근 시간 후에 하는 배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체육 교과의 전문성과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협의회 연수 또한 비난하지 않는다.
교감단과 장학사와 만남의 형식이 상식의 범위 안에 있으면 비난하지 않는다. 개인대 개인으로 밥을 먹든 술을 먹든 비난하지 않는다.
공개되는 일기로 교감단 협의회의 무용론을 제기하거나 교감과 장학사와의 만남을 폄훼하는 시선이 우려되어 덧붙인다.


#교감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