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운동장에 굴러다니는 낙엽과 같아요.
우리나라의 교장을 왕에 비유하여 제왕적인 권력을 가졌다고 표현한다. 실제로 모든 결정 권한은 학교장이 가지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도 심의 기구이지 의사결정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학교장의 책임을 막아주는 바람막이 같은 기구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장은 학교운영위원회와 마찰을 피하려고 부당한 요구를 수용하여 교직원의 불만을 살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 학교만 권한이 교장에게 집중되어 있을까? 아니다. 웬만한 조직은 거의 대부분 그 기관을 대표하는 리더에게 결정 권한이 있다. 그런데 왜 유독 학교만 학교장의 권한을 왕에 비유하면서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교육 발전의 걸림돌로 생각할까?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체육대회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체육대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교장선생님이 '교무부장! 체육대회 마치고 무슨 계획있나?' 하기에 '아닙니다. 별다른 계획은 없고, 아마 선생님들은 피곤해서 쉬기를 원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한 후에 '교장선생님! 다른 계획이 있습니까?' 하고 하니, 학생들 귀가 조치하고 전 교직원이 등산을 가자고 하셨다. 체육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기에 참 난처했다. 그래도 체육대회를 준비하고 있어서 논쟁을 하고 할 틈이 없어서 선생님들게 그대로 전달했다. 당연히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체육대회 정리를 하는데 너무 피곤했다. 내 생각에 내가 이렇게 피곤한데 다른 선생님들은 오죽하겠냐 싶어서, 선생님들에게 등산 갈 수 있겠는지를 물어니 모두 피곤해서 쉬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에게 건의를 했다. '나를 비롯한 선생님들이 너무 피곤해서 그냥 쉬면 좋겠다고 합니다. 등산은 다음에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하고 헀더니 인상을 찡그리면서 '그러면 그렇게 하지 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참 잘 되었다.' 고 생각하면서 선생님들에게 전달했다. 여기까지만 좋았다. 교장선생님이 선생님들 점심먹는데 가서 '요즘 선생님들은 체력이 약한 저질 체력이라느니, 옛날에는 하루 종일 체육대회를 해도 피곤해 하지도 않았다' 는 등과 같은 불편한 말들을 한 모양이었다. 할 수 없이 등산을 가기로 결정을 한 후에, 중간에서 조정을 한 나의 눈치를 본다고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들께 나는 괜찮으니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으니, '할 수 없이 가야 되겠다'고 해서, 교장선생님께 등산을 가자고 이야기를 하고 실행에 옮겼다.
산행을 하는 중간에 한 선생님에게, '가기 싫어면 끝까지 가기 싫다고 이야기 하지? 왜, 피곤함을 무릎쓰고 기분 나쁘게 등산을 하느냐' 고 하니 '우리는 운동장에 굴러다니는 낙엽과 같은 존재예요. 바람이 부는 대로 움직이는 힘없는 존재입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다른 조직과 다른 학교의 문화이다. 학교장은 독선적으로 결정하고, 교사는 참고 넘기고 하는 상명하달식의 전형적인 문화이다. 이 잘못된 문화가 지금의 제왕적 교장을 낳았다. 대통령도 어떤 결정을 하기전에 비서진을 비롯한 전문과 그룹과 상의를 한다. 그러나 어떤 학교장은 논의하는 척은 하지만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형식적인 절차로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하고도 자기보다 민주적인 절차로 의견을 수렴하는 교장은 없을 것이라고 떠벌리고 다닌다.
한편으로는 선생님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교육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부분과 학교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 등에 대해서는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 단, 예의를 갖추어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잊지 말자. 나하고 의견이 맞지 않다하여 감정적으로 대처해서도 안된다. 사실만을 가지고 냉정하게 판단한 후 자신의 주장을 전달해야 한다. 미리 판단하여 '내 뜻을 이야기해 봐야 받아주지 않겠지' 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말을 안하고 있기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수렴 못할 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힘들지만 작은 실천이 제왕적인 교장을 낳지 않는다.
선생님은 힘 없는 낙엽이 되어서는 안된다. 낙엽을 움직이는 작은 바람이 되어야 한다. 특히, 이제 막 교직생활을 시작하는 신규선생님은 더욱 그렇다. 당신의 모든 학교생활이 학교문화이다. 내가 변해야 학교가 변화고 교육이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