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30일
어제, 오늘 일기를 시작했다.
어떤 국회의원이 기초학력 보장법을 대표로 발의했다. 발의한 내용을 살펴보니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각 단체와 노조들의 입장은 정반대다. 적극적인 지지와 일제교사의 부활이라 해석한다.
학생들의 기초학력은 중요하다. 기초학력이 안 되는 학생이 어떻게 지식을 확대할 수 있으며 흔히 말하는 역량, 특히 미래 역량을 기를 수 있단 말인가? 올초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있었는데 진보라 자청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초학력 정의가 현시대와 맞지 않으니 폐기하거나 수정해야 된다고 했고 더 나아가 기초학력과 기본학력에 대한 교육학적 정의가 부재하니 기초와 기본 학력은 진보교육을 탄압하기 위한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 학년의 학습을 위해 필요한 읽기와 쓰기 셈하기가 안 되는 학생은 기본 학습이 부족한 것이고, 학습을 위한 기초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가 안 되는 학생은 기초학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교사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일정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교사가 교사로서의 상식을 부정한 억지 주장을 하니 너도나도 비논리적인 언어로 찬동했다. 버젓이 신문에 기고하고 그것을 퍼 나르고, 그런 주장과 그런 주장에 추호의 비판력도 갖지 못한 팬덤으로 추동하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기초학력 보장법에 학생 유급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아무리 교사가 가르쳐도 되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 유급제를 부활시켜 학부모의 교육적 의무감을 일깨워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어김없이 찬동의 팬덤을 형성하고 있었고 간혹 우려를 표하는 팬도 있긴 했다. 올해 기초학력 논란이 불거졌을 때 기초학력 정의를 폐기하거나 수정해야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는 학생 유급을 주장하고 있다. 맥락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실이다. 학생 유급제도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정말 잘 살펴야 된다. 일제고사를 부정하면서 학생 유급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데 학생 유급제도가 실시되면 일제고사 실시 이상의 사교육 폐단이 우려되고, 진단의 객관성을 주장하며 국가 주도 일제고사식 유급 심사 제도로 귀결될 것이고, 교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생 유급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한 것과는 다르게 학생 유급의 결과가 그 교사의 자질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 외에도 장점보다 폐단이 훨씬 많다.
이런 모순의 주장을 펼치는 이들의 강력한 근거는 교사는 선천적으로 성숙된 지성을 갖춘 존재라는 우월의식이다. 그래서 그들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면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고 우기고 폄훼와 조롱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만의 주장이 옳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식이다. 그러면서 다양성, 창의성, 인권을 존중한다고 한다. 모순의 연속이다.
사람은 지식의 확장으로 성장한다. 성장을 통하여 자기모순적인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그럴 때 성장에 의해 깨달은 과거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폐기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으로 성찰은 하지만 과거의 나를 지나치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으로 현재의 내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 변혁을 꿈꾸는 교사라면 최소한 자가당착을 예방하는 자기비판의식은 있어야 한다. 또 주장하지만, 변화는 나를 따라 하는 불특정 다수에 의해 시작된다. 그런데 변화를 주장하는 이가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서 타자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