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내와 아까시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좀 많이 걸었다. 찔레꽃 향과 어우러진 단맛이 촌 출신만이 가진 어릴 적 추억을 소환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내가 나보다 더 없이 산 것이 확실하여 ‘내게 시집와서 참 다행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서방님 잘 모셔라.’ 했더니 입술을 한껏 내밀며 ‘아예~예~예!’하며 놀렸다.
나 때는 웬만한 아까시나무꽃에는 어지러운 벌 소리가 가득하여 무서웠다. 하지만 어제는 간혹 몇 마리가 보였고 그나마 길바닥에 힘없이 기어 다니는 벌도 있었다. 아까시나무 아래의 흰 들꽃에는 내가 좋아하는 나비도 없었다. 이러다가 벌과 나비도 식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 시대가 오겠다.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곤충이 사라진 지구 생태계를 상상할 수 없다. 벌이 급속히 줄고 있다는 뉴스를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은 어제 확인했다.
오늘 아침에, 과학실 뒤의 빈 화단에 케일을 남몰래 심었다. 잎을 따먹을 마음보다 배추흰나비를 불러 모아서 아이들에게 구경시키고 싶다. 물론 성한 잎이 있으면 구운 삼겹살도 싸 먹고. 점심을 먹고 둘러보았더니 주무관님이 또 깔끔한 정성을 쏟고 가셨다. 아침에 내가 알아서 하겠으니 신경 쓰지 마시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아이들 교육장으로 가볍게 활용하겠다고 했는데도……. 프로 농사꾼은 어쩔 수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아침에 남몰래 케일을 심고 있는데 방역하시는 분이 슬며시 다가와서는 참외도 심으면 잘 자랄 땅이라고 하셨다. 농사짓는 사람이 땅을 비워두면 죄인이라는, 못 먹던 시절의 의식이 여전히 강건한 우리 학교다.
준벽지 학교여서 우리 지역의 유능한 교사가 모여있다. 학기 초에 학생들 교육을 최우선시하고 수업에 지장이 있는 출장은 원칙적으로 금한다고 했었다. 다른 학교에서 하지 못했던 수업은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교육지원청에서 일을 맡기려고 자꾸 연락이 오니 갈등이 되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교육지원청의 일 그만두고 싶다며, 젊고 유능한 교사들 좀 시키면 좋겠다는 하소연도 했다. 교육지원청에서 교사들에게 손을 내미는 구조적인 원인과 모순된 정책을 잠깐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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