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리더십/신규교사 멘토링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싫어 하는 것!

멋지다! 김샘! 2013. 4. 6. 07:59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가르친 보람이 없을 때입니다. 흔히, 선생님만 열심히 하고 아이는 딴짓만 열심히 합니다. 선생님이 분통이 터집니다. 아이에게 '너 때문에 선생님이 이 고생을 하는데 도대체 너는 왜 그러니?'하고 질책도 합니다. 아이는 묵묵부답입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는 선생님과 공부하는 것이 좋아하지도 원하지도 않습니다. 원하는 마음만 있어도 그나마 가르치는 보람은 있습니다. 더욱 좋은 것은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학습때문에 생기는 갈등을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으로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교에 컴퓨터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학습 수행 속도가 빠른 아이들에게 컴퓨터 게임을 제공했습니다.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기 때문에 교과학습을 원하게 된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컴퓨터 게임을 원했기 때문에 교과학습을 좋아하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은 게임중독의 심각성으로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절된 짧은 시간의 단순한 보상이 게임중독을 만든다는 논리에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체육수업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딱딱한 체육수업보다 게임활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체육수업을 원하게 된 것입니다. 체육전담을 할 때 얌체같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게임활동을 하는 시간이면 열심히 참가하다가도 다른활동을 하면 몸이 아프다는 아이였습니다. 처음에는 하려는 의지가 없는 아이에게 억지로 시켜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마음과 괜한 욕심으로 학부모에게 오해를 사기도 싫어서 그 아이가 하는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실험을 했습니다. 첫번째 실험은 그 아이가 체육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오면 '게임활동'을 할 것이라고 하고 실제로는 다른활동을 하였는데, 초기의 몇 시간 동안은 체육수업에 참가했지만 이내 몸이 아프다고 하면서 참여를 거부했습니다.

 두번째 실험은 그 아이를 포함하여 모든 아이들에게 세 시간만 체육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면, 한 시간은 게임활동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한 시간을 참여하고 난 후 '언제 게임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을 마친 후에도 똑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드디어 세 시간을 마친 후에 똑같은 질문을 하기에 '다음 체육 시간은 게임활동이다.'라고 했더니, 활짝 웃으며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 뒤로 체육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아이때문에 신경을 써는 일은 줄어들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이용하여 제가 원하는 체육수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지만 잘하기를 원합니다. 선생님도 공부 잘하는 아이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면 좋아합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간혹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공부 잘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착가를 합니다. 당신들의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십시오. 시험기간에 마음이 편했습니까? 놀고 있었지만 시험은 잘 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당신에게 달콤한 당근-금전적인 보상이나 물건, 또는 간절히 원하는 무엇-을 제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이들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학습이 이루어집니다. 임계기라고 하는 이 시기에 정상적인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어른이 아니기에 스스로 알아서 척척 하지도 못합니다. 부모님,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알맞은 환경과 학습을 제공해야 됩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어른들이 아이가 싫어한다고 중요한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는 학부모들의 삐뚤어진 자녀 사랑과 교육열이 많은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사회의 분위기에 감금당해 가르침을 적당히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생님의 마음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달리 선생님입니까? 체벌과 훈육은 다릅니다. 임계기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훈육을 통해서라도 가르쳐야 합니다. 간혹 체벌 금지가 교육적인 훈육까지도 하면 안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더 나아가 아이들에 대한 열정이 식은 자신을 탓하기 보다, 체벌금지라는 벽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하지만 싫어하는 것을 교육적인 훈육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교수법으로, 조급한 마음보다 더디지만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오늘날의 선생님의 사명이라 생각됩니다.

 

 아이들이 좋하는 것을 선생님이 원하는 것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으로 필요하지만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육현실이 그렇지 않음을 압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바뀌지 않으면 영원히 바뀌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