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7

11월, 찬바람 부는 날 대곡숲을 거닐며

올 가을 들어 찬바람이 제일 세게 불었다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고 대곡숲을 걸었다  여기저기서 갈색 솔잎이 별똥별의 비행처럼 땅으로 떨어졌다  세찬 바람에 밀쳐진 뾰족한 솔잎이 얼굴 여러 군데를 찔렀고 기적 같은 확률로 머리카락 없는 정수리에 꽂힌 솔잎에 따끔했다  소나무 아래를 거닐 때면 항상 푸름이 다한 갈색의 솔가리는 있었다  소나무도 단풍 들고 낙엽 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같이 찬바람 부는 날,  사방이 단풍으로 물들어 낙엽으로 땅에 닿는 오늘에야,  솔잎이 단풍 져 낙엽 되어 내 몸을 콕콕 찌르는 오늘에야,  푸른 소나무 아래를 걷기만 했던 무심한 나를 일깨웠다  어디 항상 푸른 게 어디 있으랴  어디 변하지 않는 게 진리이기만 하겠는가?  변하다가도 변하지 않아야 하고 변하지 않다가도..

2022년 9월 26일

부끄러운 가을 앞에서. 출근길 싸늘한 공기가 낙엽을 굴리면, 이젠 가을이구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나둘 선명하게 피어나던 코스모스가 확 달아오르면, 드디어 가을이구나! 밤에만 피던 달맞이꽃이 따가운 햇살 받으러 샛노랗게 입 벌리면, 정열의 여름을 보내는 가을이구나! 나무가, 꽃이 화려한 가을을 보내는 건, 수줍었던 봄의 향과 여름의 녹음을 태양으로 버무려 토해내기 때문이지. 사람이 가을을 마주한다는 건, 부끄러웠던 봄날과 분노로 이글거렸던 여름날을 겸손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거지. 울긋불긋한 산을 울긋불긋한 사람이 타고 오르는 장관을 감흥 없이 쳐다보는, 나도, 가을인가? 꽃샘추위에 덜덜 떨었던 봄날의 부끄러움, 뜨거운 태양처럼 후끈거렸던 여름날의 분노가 없는, 나도, 가을을 맞이해야 하나? 샘솟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