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3

2025년 4월 22일

비 같은 비가 내린다.짙은 연두색의 쑥절편을 받아들곤, 직접 쑥을 캐서 시장통 떡방앗간에서 옛날 방식대로 한.쓸데없이 하나하나에 비닐 포장했다고 투덜대곤, 옛날에는 눌어붙지 않게 참기름울 발랐지.휴게실 창문 너머 헐레벌떡 학교로 뛰어드는 교직원을 보며, 구수하게 구워진 커피 원두를 천천히 갈았다. 커피를 내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업무포털을 보려는데 얕게 켜놓은 클래식 음악이 오늘 같이 비 같은 비가 오는 날은 낭만에 젖어란다.한 모금의 커피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눈치 없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떠오르고.어이없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내게는 또.이러는 내가 참 짜증스럽다, 그래도비가 와서, 비 같은 비가 와서 좋다.

2023년 10월 5일

커피를 넉넉하게 내리는 것은 내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다. 공동의 공간에 커피 향만 남기곤 나만 마시는 옹졸한 인간 되기 싫어서 조금 더 내릴 뿐이다. 여분의 커피를 누가 마시든 상관없는 나를 위한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다. 달달한 커피믹서가와 중독성의 쓰디쓴 에스프레소가 땡길 때는 커피를 내리지 않는다. 내린 커피에 젖은 이들이 커피를 내리지 않았다고 소심하게 타박하면 내가 다른 커피를 마셔서 내리지 않았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처음부터 나말고 다른 사람은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까. 누군가의 넘겨짚은 소문이 어느 순간 진실이 된다. 학생이 올 때마다 교직원이 올 때마다 '그런 진실'이 딸려 온다. 때로는 사람보다 '그런 진실'이 먼저 온다. '그런 진실'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어서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

2021년 5월 28일

부득이하게 학교와 떨어진 곳에서 내려 고샅을 따라 출퇴근을 한다. 짧은 거리이지만 계절에 따라 소소하게 변화는 시골 풍경이 볼만하고 때로는 작은 변화에 마음이 흔들리며 어릴 적의 삶을 소환도 한다. 금계국이 한창이다. 내 어릴 적에는 없었던 꽃인데 번식력이 좋아 도로변, 산소 등을 가리지 않고 주황색에 가까운 짙은 노랑을 물들인다. 오늘 아침,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양에서 가을바람에 살랑거리는 코스모스의 정취를 느꼈다. 향긋한 향이 섞인 신선한 공기를 맛있게 먹으며 출근했다. 이렇게 맛있는 공기에 인간을 해하는 바이러스가 섞여 있어서 마스크로 걸러내는 중에 덩달아 좋은 향도 걸러내는 현실이 아쉽다. 늘 하듯, 교무실 창문 열고 클래식 주파수에 맞춰진 라디오를 틀고 핸드밀로 커피콩을 가는데 창문 넘어 들어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