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자치회에서 무학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학교 텃밭에 모종을 심었다. 학생 자치회의 교육활동이지만 텃밭에 모종을 심으려면 어른들의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주무관님이 흙을 일구어 비닐 멀칭을 하면, 학생들은 무학년 조별로 심을 모종을 선택하고, 담당 선생님은 모종을 주문하여 모종에 따라 심는 방법을 다른 교직원들과 학생들에게 안내했다. 모든 과정에 주무관님의 손과 조언이 필요했다.
우리 학교는 작년까지는 주무관님이 주도하는 학교 텃밭이었다. 학생들은 관찰과 견학, 수확 체험이 주요 활동이었다. 올해는 학생들이 주도하는 생태 학습장으로 텃밭의 역할을 정했다. 그래서 원래 의도는 무학년 조별로 텃밭을 나누는 활동부터 삶과 앎을 텃밭에 접목하려 했다. 그런데 주무관님이 한사코 그렇게 하면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만류했다. 나와 담당 선생님이 올해부터 텃밭의 역할을 설명하고 학생들이 할 수 없는 부분만 도와달라고 사정을 했는데도, 어느 날 출근해보니 주무관님이 고랑을 타서 비닐 멀칭을 예쁘게 해 놓으셨다.
우리 학교 주무관님은 요즘 학교에서 보기 드문 분이시다. 학교의 실내외 관리가 철두철미하고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래서 텃밭도 직업적인 농부처럼 가꾼다. 예부터 전해오는 농촌의 격언인 '논밭 농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이 욕한다.'를 철저히 지키는 분이다. 그런 분의 성정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학생들 중심의 텃밭을 운영할 수 없어서 조금씩 행복한 양보를 얻어내고 있다. 오늘도 학생들이 모종을 심는 것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텃밭 정지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올해 텃밭을 이용한 생태교육의 목표는 심고 가꾸며 수확하는 일에 학생들의 손길이 직접 닿게 하여 교과의 앎을 텃밭의 삶과 거꾸로 텃밭의 삶을 교과의 앎으로 조금 연결 짓는 것이다. 올해의 경험이 내년으로 연결되면 올해보다는 더 앎과 삶을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텃밭을 생태교육장으로 활용하려면 어른들의 보이지 않는 힘이 많이 필요하다. 농기계를 이용한 기본적인 정지작업, 교과와 관련된 모종 선택을 비롯한 생태교육 프로젝트 수립, 학생의 자발적인 참여 동기 유발, 무엇보다 수확을 위한 관리 중심의 텃밭에서 탈피한 생태교육장으로의 인식 전환이 꼭 필요하다. 학생들의 노동 한계를 벗어난 작물 재배로 노동의 가치를 왜곡하거나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한 수확에만 집중하여 생태교육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학교 텃밭을 이용한 생태교육도 복합적이어서 여러 사람들의 손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들의 손이 제 역할을 할 때 학교 텃밭에서 교육이 꽃피고 성장한다. 그래서 텃밭 교육은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학교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한 협업과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교사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짐을 지우는 텃밭 교육은 그 의도와 관계없이 두 사이를 멀게 한다. 꼭 유념해야 한다.
학교 텃밭에도 과학기술을 접목해야 한다. 친환경이나 생태교육을 한다고 무조건 원시적인 방법을 고집하면 잡초 제거와 적절한 동기를 부여하는 수확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잡초의 관리와 작물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비닐멀칭이 필요하다. 비닐 멀칭을 왜 해야 하는지-필요한 경우 일정한 부분에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비교해도 된다.-를 설명하고 수확 후에는 비닐을 제대로 수거하여 재활용하면 된다. 생태교육과 원시적인 작물 재배법은 다르다. 원시적인 작물 재배만을 강요하는 텃밭 교육은 학생들에게 농업에 대한 오개념과 농촌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준다.
학교 텃밭을 이용한 교육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교감 일기(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년 5월 4일 (0) | 2021.05.04 |
---|---|
2021년 4월 29일 (0) | 2021.04.29 |
2021년 4월 26일 (0) | 2021.04.26 |
2021년 4월 23일 (0) | 2021.04.23 |
2021년 4월 20일 (0) | 2021.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