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부터 학교에 있던 짐을 정리하고 있다. 버릴 것 버리고 나니, 버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 버리지 못해서 갖고 다니는 것들을 담은 A4종이상자 하나, 드립커피 도구를 넣은 다회용 종이가방 하나가 전부다. 교감 명패는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다. 교감으로 첫 발령받을 때, 하나 정도는 기념으로 필요할 것 같아서 챙겼었다. 지금은 교감자리 칸막이에 올려놓을 이름만 있는 작은 명패가 딱 좋다.
살면서 잘한 것 중의 하나는 골프를 시작한 것이고 더 잘한 것은 그만둔 것이다. 한 20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손이 얼어 골프채를 제대로 쥐지 못해도 햇볕이 아무리 뜨거워도 신나게 쳤다. 어느 날부터 마음 한구석에서 뭔가 모름 미안함이 싹터서는 자꾸 커져만 가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꼭 쳐야만 할 때 말고는 라운딩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골프를 그만두었다는 소문냈다.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고, 골프 연습장에 두었던 골프가방과 액세서리는 내가 관리하던 학교 관사로 옮겼다. 꽤 비싼 장비여서 처리를 고민하고 있는데 제주도에 사는 처조카가 달라고 해서 가방을 정리하는데 이글 기념으로 동반자가 사인한 골프볼 두 개가 나왔다. 하나는 기억나는데 다른 하나는 동반자 외에는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골프를 그만둔 요즘은 들판이나 산길을 걸으면 빚진 마음이 사라져 온몸이 정말 개운하다.
교감 모임이나 비슷한 모임에 나가면 골프를 쳐야 한다거나 친 이야기가 어김없이 나온다. 안 하면 조류에서 뒤처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굳이 기후위기와 자연 파괴를 골프와 연관 짓지 않더라도 그럴 필요 없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럴 필요 없다. 골프는 운동이 아닌 돈 많이 드는 그냥 취미다. 많은 취미 중의 하나일 뿐 자랑거리도 아니다. 하긴 나도 운동이 될 것이라고 착각했던, 골프 친다고 철없이 떠벌렸던 시절이 있었으니.
행정정보공동 이용 권한 반납하고, K-에듀파인으로 인수인계 한 후, 새로운 학교에 교감 업무 인수하러 가기 전에 일기 썼다.
'교감 일기(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년 9월 1일 (0) | 2023.09.01 |
---|---|
2023년 8월 29일 (0) | 2023.08.29 |
2023년 8월 24일 (0) | 2023.08.24 |
2023년 8월 22일 (0) | 2023.08.22 |
2023년 8월 11일 (2) | 2023.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