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4년 2월 8일

멋지다! 김샘! 2024. 2. 8. 13:42

  나를 포함한 많은 국민은 부모가 자녀를 돌봐야 한다고 항변한다.
  국가의 이상적인 돌봄 제도는 부모에게 자녀를 돌볼 수 있는 시간과 돈을 제공하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늘봄학교라고 명칭을 바꾸지 않는 한,  그저 학교에서 학생을 오랫동안 돌보는 프로그램인 늘봄에 학교라는 이름을 붙이면 안 된다. 그것도 교육부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내게 늘봄학교가 무슨 학교냐고 묻는다. 늘~ 돌봄이라는 대답에, 그게 뭔 학교냐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왜 국가는 초등학교 늘봄처럼 자녀와 부모를 오랫동안 분리하는 돌봄 정책을 고집할까?
  오랫동안 부모와 분리된 아이들의 불안이 초래할 사회적 손실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일까?
  나랏돈이 부족하여 학교에다 내맡기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부모의 노동력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가 있는 젊은 부모의 노동 시간이 단축되면 기업은 그만큼 노동자를 더 채용해야 하고, 안 그래도 저출생으로 노동 인구가 적은데 이는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심리학자와 교육학자들이 아이들의 불안이 초래할 미래를 걱정하며 부모 돌봄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정상국가라면 이를 모를 리 없다.
  부모가 원하는 다양한 돌봄 정책은 생각 외로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미래의 질 높은 노동인구에 대한 투자여서 헛돈 쓰는 것도 아니다.
  지금, 초등학교에 밀어붙이는 이유는 통제의 편리성 때문이다. 국가 정책을 바로바로 반영할 수 있는 기관은 학교뿐이다. 지금껏 학교가 그렇게 해왔다.

  친기업 중심의 노동 정책이 노동자 중심으로 변해야 국가의 돌봄 정책도 변한다.
  기업이 그토록 바라는, 국가가 그토록 강조하는 창의적인 인재는 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시간과 비례한다.
  저출생 극복과 부모 양육 부담을 덜기 위한 늘봄학교가 향후 불평등과 양극화를 고착시킬 것 같은 우려를 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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