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학교교육과정 설명회를 했다. 예상했던 대로 학부모는 적었다. 정성껏 준비한 교직원들과 일 년에 한 번 학부모들 앞에서 어색하게 인사하는 선생님들은 적게 와서 아쉬웠고 적게 와서 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어떤 학교는 학교교육과정설명회를 온라인으로, 어떤 학교는 학급에서 분산하여, 어떤 학교는 4월에 수업공개와 함께, 어떤 학교는 저녁에 천차만별이다. 학교 형편에 따라 효율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다.
별 소용도 없는 학교교육과정 설명회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에 공감하지만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연수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별도의 학부모 연수회를 해야 한다. 학교교육과정 설명회에도 오지 않는 학부모들이 학부모 연수회에 올 일은 더더욱 없지 않은가.
학부모를 탓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일찍 퇴근할 정도로 학교교육과정 설명회가 가치로울까? 더군다나 시급으로 일하는 분들은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럼 학교는 학교교육과정 설명회를 학부모가 직장에서 일찍 퇴근할 정도의 가치로 만들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참여를 유도하는 이벤트도 이벤트를 위한 이벤트 일 뿐이지 교육과정을 제도로 이해하고 인지하는 이벤트는 되지 못한다.
너무 적게 와서 아쉽고 허탈하다는 분께 우리는 우리가 해야만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그것으로 만족하자고 했다.
나는 학부모 참여율을 높이는 방법을 안다. 학교 교육에 참여하는 학부모 주도 자치회 조직을 지원하고 기본 예산을 지원하는 일이다. 초기 조직을 할 때 학부모 자치회 성격과 예산 쓰임새를 분명히 해서 학부모 놀이 모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부모를 계몽하여 학교 교육에 동원하지 않아야 한다. 학부모 자치회의 방향을 통제하거나 참여를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당연히 학교에 호의적이지 않거나 사사건건 간여하여 학부모의 의지대로 학교를 끌고 가려한다. 그것이 교육적이지 않을 때 학교는 대등하고 당당하게 이이를 제기하여 조율하고 때로는 선제적으로 토론을 제의하여 옳은 방법을 찾아 학생을 위한 바른 교육을 실현해야 한다.
우리는 그럴 용기와 열정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지, 무조건 학부모의 비위 맞추며 편하게 학교 생활하려는 게 아닌지, 그러면서 학부모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탓하고 있지 않은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와 대등하게 관계 맺으려는 마음 세움과 평등한 관계를 맺으려는 맞섬이다. 얼굴 맞대어 생각이 다르다고 당당히 말해야 한다. 격앙된 얼굴엔 웃으며 여유 부릴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이 팽팽하게 맞설 땐 경험의 지혜와 교육자의 전문성으로 절충을 위한 묘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끝내 타협되지 않을 때는 굳은 심지로 불화를 감내해야 한다.
잃어버린 대등한 관계, 우리 스스로 찾아와야 하는데· · · · · ·
청렴과 교권보호를 학부모에게 간략하게 안내하며 교사의 얼굴을 살폈다. 다들 긴장해서인지 피곤해서인지 얼굴이 하얬다. 하얘진 얼굴에 불그레한 온기를 띄우기 위해선 빨리 마쳐야 했다.
헛헛한 마음 달래려 친구와 막걸리를 여러 잔 했다. 막걸릿집 창문에 가로등 불빛을 내리치는 세찬 빗방울이 보여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걸리를 마셨다. 막걸리가 다할 땐 비도 멎겠지. 웬걸, 밤새 마셔도 비는 멎지 않을 기세다. 편의점의 우산 속을 걸으며 콩나물국밥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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