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경청이 대세다. 연수회마다 모든 강사가 하는 말이 경청이다. 남의 말을 잘 듣자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남의 말을 잘 듣는다. 아니 들으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듣기만 하는 것만이 경청인가?
한번쯤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교행사를 하기위해서 관리자가 교사들의 의견을 묻는다. 많은 토의와 토론으로 결정난 것을 이야기했더니 싹 무시 해버리고 본인의 의지대로 한다.
교무회의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어떤 주제를 던져놓고 교사들의 의견을 묻는다. 순진한 교사가 용감하게 이야기를 한다. 관리자는 그대로 듣고 있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관리자의 마음속에 있다. 울분을 토한다. 애초에 묻지를 말자? 이것도 경청인가?
이런 경험 많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건의사항이나 의견을 듣고자 솔직하게 눈치보지 말고 이야기하라고 한다. 선생님은 잘 듣고 난 뒤 학생들의 의견에 방어하는 이야기만 연신한다. 경청을 한것인가?
이런 분들 보았을 것이다.
학교 관리자가 바뀌었다. 오시자 마자 '자기 스타일'대로 학교를 확 바꾼다. 기존에 있던 선생님이 학교의 사정과 불가피함을 건의해도 듣기만 하고 결국 자기 고집대로 한다. 바꾼 대부분의 것이 몇달을 못가고 원래대로 돌아간다. 쓸데없이 예산만 낭비한 것이다. 남의 말을 잘 들었으니 이 또한 경청인가?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경청이고, 그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참여하는 것은 올바른 경청이 아니라 끼여드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할 때 과묵하게 가만히 있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연령차이가 나면 더욱 그렇다.
경청을 왜 하는가?
서로 공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즉 소통하기 위한 것이 경청이다. 공감이 없는 경청은 단방향의 불통이다. 앞에서 언급한 경우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공감이 없는 경청. 곧 불통이다.
경청을 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고, 자신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하는 사람이다. 그래야만 경첨을 통해 공감이 생긴다. 공감이 생기면 쌍방향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학교가 공감이 있는 경청으로 쌍방향의 소통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면 정말 좋겠다.
나는 어디에 해당될까?
듣는 척만 하는 사람인가?
듣기만 하고 무시하는 사람인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인가?
다른 사람과 생각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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