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가정이 필요합니다.
아이들과 가정을 분리하는 현 정부의 보육정책을 비롯한 육아정책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부모님들이 마음놓고 아이들을 돌보는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성격형성은 유전과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과학적 견해입니다. 어떤 이는 성격형성의 시발이 어머니의 모유수유라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어머니와 가정의 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육아정책은 가정을 우리나라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인간의 행복 추구를 위한 가정의 역할은 포기한 듯합니다. 저출산으로 세금을 낼 인구가 줄어드니 아이를 낳아야 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기본적인 양육비를 지원하고, 모자라는 양육비와 교육비는 아이를 가정에서 떼어놓으면 부모가 마음놓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 충당할 수 있다는 논리에 근거한 보육정책입니다. 물론 아이를 가정에서 떼어놓기 위해서 아이의 보육비를 일정 나이까지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무상지원의 예산을 놓고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추구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의 성장을 생물학적으로만 접근한 아주 불안한 논리입니다.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바른 인격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 가지고 있는 인격인 천차만별의 성격에는 인간으로서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이타적인 사랑, 존경, 존중, 타인배려, 관용, 용서 등이 내면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내면화된 속성들에 의해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회가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답게 만드는 공통의 속성들은 대부분 부모님의 품속과 가정에서 생물학적 성장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내면화의 시기 임계기가 있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 내면화하지 못하면 인간다운 속성들이 불안하고 불완전하게 자리를 잡아 개인의 행복과 조화와 균형으로 성장하는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육정책이 이 임계기에 있는 아이들을 부모님과 가정에서 떼어 놓고 있기때문에 방향이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생물학적 성장에 필요한 돈을 중심에 둘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바른 인격형성을 중심에 두는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아이를 떼어 놓을 것이 아니라 부모님들이 아이를 편안하게 돌볼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정착시켜야 합니다. 충분한 유상 육아휴직, 출산 여성에 대한 배려한 편견 금지, 직장내 육아시설 확대, 아버지의 육아에 대한 법적 보장 등과 같이 부모님들이 마음껫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사회분위기와 제도 개선, 실행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징벌적 제재가 있어야 합니다. 돈이 중심이 된 정책에서 인간중심의 정책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결코 행복한 민주시민이 될 수 없습니다.
창의·인성 교육이라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인성과는 구별됩니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현대는 독불장군식의 리더나 전문가보다,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소통하여 협력과 협동을 중요시하는 전문가나 리더가 성공하기 때문에 지적수준에 알맞은 인성을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의·인성 교육을 아무리 강조해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부모님의 품이나 가정에서 안락함과 편안함을 기반으로 하는 안정된 인성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는데 학교에 들어와서는 경쟁교육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배려하고 존중하고 소통하는 인성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바른 인성의 바탕위에 지적인 학습이 이루어져야 올바른 창의·인성 교육이 되는데 우리는 거꾸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력경쟁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쟁교육과 경쟁위주의 학생선발 방법도 창의·인성 교육을 방해하는 한 요소입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경쟁을 먼저 한 후 협동을 하는 임상실험과 협력을 먼저 한 후 경쟁을 하는 임상실험을 했더니 후자가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경쟁은 힘과 권력, 경제력이 있는 부류가 승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결과는 정해집니다. 따라서 사회적인 약자나 상대적인 약자는 언제나 손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승자도 올바른 창의·인성을 내면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와 국가에 공헌하는 민주적인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기 보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욕심을 우선하여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공분을 사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도가 나날이 떨어지는 것도 생산성과 능률향상이라는 구실로 행해지는 경쟁중심의 사회구조가 경제적인 양극화와 정해진 승자들에 의한 권력독점과 횡포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이 심화되기 때문입니다.
얼마전에 학부모들과 협의회를 가진 학교장이 학부모님들이 내년 학교교육에 꼭 반영되기를 원하는 교육이 가정교육이기 때문에 학교교육과정에 반영하자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정교육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가정교육을 학교에서 할 수 있을지? 정말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더 역설적으로 이야가를 하자면 유아기부터 가정에서 분리된 아이들을 이제는 부모도 어찌할 수 없으니 학교에서 좀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사회학적인 기능이 사라지고 생물학적으로만 존재하는 가정의 붕괴가 시작된 것입니다.
무상급식에 다시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미 부모님들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급식을 무상급식으로 이름짓는 것도 이상하지만 아이들을 위하고 우리나라의 장래를 걱정한다면 부모님들이 자녀들과 가정에서 행복하게 밥 먹으면서 가정의 사회학적인 기능을 회복하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가정에서 분리된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소통과 배려에 의한 협력보다 경쟁으로 올바른 인성이 가슴에 내면화된 된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학습되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사회!
아이들을 가정으로 돌려 보내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마음놓고 아이들을 돌보는 사회구조로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보육시설이나 학교가 가정의 역할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보육사나 선생님이 부모님의 역할을 절대 대신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라도 부모와 가정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아이들을 찾는다면 이미 늦었습니다. 때를 놓친 것입니다. 틈나는대로 아이들과 스킨십을 즐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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