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학교 관리자가 젊어지면 학교가 많이 변할 줄 알았습니다. 젊은 관리자는 열린 관리자다. 젊은 관리자는 진보적이다는 편견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든 어느 날 젊은 관리자가 학교에 왔습니다. 잘못된 편견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왜 관리자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일까?'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한동안은 퇴행적인 학교 제도와 민주적이지 못한 학교 문화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민주적 방식으로 정해진 학교 제도는 학교 안에서 바꿀 수 없어도 비민주적인 학교 문화는 교사들의 지적 성장에 용기를 동반하면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가슴 떨리는 작은 용기로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리자가 조금 바뀌면 비민주가 민주로 확 바뀔 수 있고, 심장 떨리는 작은 용기 내지 않아도 되는데 왜 관리자는 바뀌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 교조주의로 상당 부분의 찜찜함을 남겨두고 해소를 위한 작은 길을 발견했습니다.
교사에게 교조[敎條]는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입니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성장과 발전입니다. 사회 정의를 갈구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성장과 발전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고, 타인의 행복과 공존하기 위한 의무와 권리를 다하는 시민으로서의 성장과 발전입니다.
그래서 학교의 교육활동은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 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긍정적인 효과가 많으면, 아이들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실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정상적인 교조는 승진과 관련이 없거나 적습니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양적인 실적이 필요합니다. 본질적으로는 정상적인 교조에 의한 교육활동의 결과가 실적입니다. 하지만 점수의 기준에 맞게 정선되고 개량시켜야 승진을 위한 점수로 인정됩니다.
승진하고는 아무 관련 없는 쓸데없는 일이라며 투덜거리면서 절박한 심정으로 반복하지 않으면 충족될 수 없는 점수들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육 본질보다는 형식적이고 의미 없는 실적물 쌓기가 교육의 본질이라는 비정상적인 교조가 탄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상적인 교조를 부정하면 승진을 미화할 수 없기 때문에 관리자가 되어도 비정상적인 교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결국 이상한 승진제도가 이상한 관리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승진제도를 바꾸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능력 없는 교사의 시샘이 아니라 교육 본질을 회복하자는 주장입니다.
사족을 더하면 관리자가 아닌데도 비정상적인 교조에 물든 교사들이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교조를 미화하는 관리자들에게 갇혀서 물든 것입니다. 환경이 바뀌어도 교육 본질로 쉽게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비정상적인 교조를 부정하면, 교사로서의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는 강박으로 비정상을 수정하여 더 큰 비정상을 만드는데 몰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활동으로 생산된 실적물에 작은 변화를 가하면 승진을 위한 점수로 쉽게 유용할 수 있습니다. '선생 같지 않은 선생이 교장 된다.'라고 하는 말이 이렇게 탄생되었습니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교사는 교조주의자가 쉽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 본질을 추구하는 정상인 교조와 교육 본질에서 이탈한 비정상인 교조에 물드는 것은 '교사로서 어떤 삶을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나는 어떤 교조에 물들어 있는가?
나의 교조는 정상인가?
교사의 교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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