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이 학교에서 와서 얼토당토 않은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었고, 만약에 들어주면 교사에게 심각한 일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중하게 거절하였더니 교감, 교장에게 이야기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관리자가 당연히 정중하게 거절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수용해 버렸습니다. 여쭤보니 별일 안 생기면 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별일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했더니 안 생길 것이라며 역정을 냅니다.
교사들이 아침에 출근하면 교실에 가는 것이 아니라 휴게실에 모여서 세속적인 이야기 나누다가 1교시 종 치면 교실로 갑니다. 그동안 아이들은 교실에서 자기들끼리 알아서들 활동을 합니다. 교사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 좋은데 정규시간 종료 후 아이들 보내고 합시다라고 했더니 무시합니다. 관리자에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분위기 좋은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교무 협의 시간에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활동을 관리자가 제안합니다. 객관적인 논리로 부당함을 제기하고 우리 학교 여건에 맞는 다른 활동을 제안하였더니 감정적으로 거절합니다. 다른 교사들은 침묵으로 관리자의 의견에 동의하여 아이들에게 죽은 교육활동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공개수업을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과 실제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지도안으로 만들었습니다. 장학지도로 포장된 검열 과정에서 난도질 당했습니다. 배움 중심의 지도안과 유사했습니다. 지금은 누군가에 의해 정형화된 배움 중심의 지도안이 아니면 난도질 당합니다. 전문적이고 열정적인 교사들의 수업은 지위와 권위주의에 의해 난도질 당합니다.
교육방송 전문가로 오랫동안 활동했습니다. 교육방송을 테이프로 녹화하여 각 교실로 보내는 일이 힘도 들었지만 학내망이 구축되어 가는 시점에서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교육방송을 캡처하여 공유했고, 학교 홈페이지도 직접 만들어 간이 VOD 시스템을 구축하여 가정과도 연계했습니다. 이 당시에는 한국교육방송(EBS)도 인터넷 방송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도 테이프 보관과 자료 검색, 특정한 부분의 영상을 활용하기가 수월해졌다며 좋아했고, 학부모들도 호응이 좋았습니다. 심지어 EBS 관계자도 제 강의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교육방송 연구학교에서 보고서에 이 시스템을 소개하고 일반화하려 했습니다. 담당 장학사가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동영상을 서비스하기에는 학내망의 속도가 느리다는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차근차근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고 심지어 관리자도 거부했습니다. 안정적인 기존의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포기하기가 아쉬워서 보고회 날 부스 한 곳을 만들어 시연했습니다. 참관하신 선생님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3년 뒤부터 EBS에서 현재와 같은 VOD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직접 겪은 교사로서의 한계였습니다. 지위가 능력으로 인정받는 현재의 학교에서 교사가 느끼는 한계였습니다. 지금도 하루에 수 회에서 수십 회의 정신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그 한계가 관리자에 의한 것도 있지만 교사가 교사에게 선을 긋는 한계도 있습니다.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은 정치적인 투쟁을 통하여 제도적으로 민주적인 학교 구조로 변화하거나, 선한 관리자가 민주적인 문화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사들에 의한 학교 혁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많은 교사들은 전교조로 대표되는 정치적인 투쟁을 싫어합니다. 근본은 동의하지만 정치 투쟁을 교육과 별개라는 논리로 접근하여 오히려 전교조를 탓하는 역 논리로 작동시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우리의 모든 생활과 정치는 한 몸이라는 것을 알 것이며 최소한 유기적인 관계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교사의 정치투쟁을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본인의 삶이 평면적임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정치투쟁에 참여하지 않는 본인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전교조를 폄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한 관리자에 의해 제공되는 민주적인 학교문화는 바람 앞의 촛불과 같습니다. 관리자의 돌변, 관리자의 교체에 의해서 언제든지 비민주적인 학교로 퇴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의식 있는 관리자가 많아져서 예전보다 민주적으로 변화는 학교가 많은 것 같습니다.
교사들에 의한 학교 혁명은 민주적인 학교 문화의 필요성을 가진 전 교직원의 열망이 폭발할 때 가능합니다. 폭발하기 전까지 선지자 교사들의 운동. 인내와 희생이 따릅니다. 이러한 이유로 중도에 불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선지자 교사로 성공하기 위해 위해 전문 분야에서 열정을 쏟는 분들을 자주 접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애써 감추는 한계를 눈치채곤 합니다. 관리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동료 교사들의 냉소적인 반응, 인간의 예의에서 벗어난 동료 교사의 4(?)가지 없는 품격, 현행 승진제도의 부작용과 일제에 의한 교사가 교사를 업신여기는 노예근성의 문화로 선지자 교사의 열정적인 에너지 상실을 목격합니다. 이런 이유로 간혹 화난 선지자 교사는 무조건 관리자를 싫어하고, 방향성을 잃고 삐뚤어진 선지자 교사는 인간의 행복한 삶을 포기한 자질이 없는 교사만이 승진한다는 편견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안타깝습니다.
학교 혁명으로 교사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습니다.
전교조의 깃발로 교육혁명을 이루려 했듯이 이제는 진화된 교사들에 의한, 성숙한 교사들에 의한 단위 학교의 혁명으로 그 한계를 넘고 싶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선지자 교사들에게 부탁합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열정 식히지 마십시오. 에둘러 말하지도 탓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의 열망과 열정이 포기되지 않을 때 진화된 교사, 성숙한 교사들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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