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언설

혁신(행복)학교가 대안학교를 지향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멋지다! 김샘! 2017. 12. 11. 20:22

건성으로 참여하는 지역 교사연구회가 있습니다.
혁신(행복) 학교와 관련된 연구회이며 직관적으로 열정적인 교사들의 모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연구회 분들과 지역의 대안학교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벤치마킹보다 평소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습니다. 대안학교의 궁금증이 아니라 방문하는 대안학교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습니다.

방문한 대안학교의 역사와 함께 한 선생님이 건물 하나하나에 대한 의미와 신입생 선발, 교육과정 등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하셨습니다.
설명을 들으면서 동의하지 못하고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의 행복을 최고로 내세운다고 하셨고 이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혁신학교에서 많이 차용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지역이 다른 많은 곳에서 차용하기 위해 방문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지리산 종주 프로그램을 전국의 혁신학교가 실시하는 바람에 정작 본인들은 내년에 실시가 어렵다고 합니다. 이곳 대안학교에서는 지리산 종주 프로그램이 학생들의 행복한 성장과 관련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국의 혁신학교가 지리산 종주 프로그램과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요?

혁신학교의 탄생은 공교육이 공교육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과 역기능에 대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혁신학교는 공교육의 제자리 매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현재의 대안학교 프로그램이 공교육의 자리매김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십니까?
이 대안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인문과 예술 활동을 강조했습니다. 학생들이 싫어하는 수학, 과학, 영어의 비중은 아주 낮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원하는 학생이 있으면 일대일로 배울 수 있고 카이스트에 진학한 졸업생을 예로 들었습니다.
공교육에서 수학, 과학, 영어의 비중을 줄이고 제한된 인문과 예술에 치중하는 것이 옳을까요?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행복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학생들이 싫어한다고 제거하는 것이 옳은 교육일까요? 인문학에 대해 일치하는 생각을 인용하겠습니다.

서양말에서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어의 '인문학'이나 '인문주의' 같은 말에는 어떤 아우라가 드리워져 있어. 그래서 마치 제대로 된 교양인이나 지식인이 되려면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처럼 돼 있어. 그렇지만 나는 어느 편이냐 하면 지식의 중요도에서 훨씬 앞서는 것은 인문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이라고 생각해. 사실 역사적으로 인간의 세계관을 바꿔온 것은 인문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이었어. 자연과학자들이 발견한 지식들이 보편화하면 거기에 바탕을 두고 인문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이 이론을 새로 정립하곤 했지. 우리가 플라톤이나 공자보다 더 똑똑하다면, 그것은 지금 인문학이라고 불리는 영역에서 그들보다 더 생각이 깊어서라기보다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그들보다 아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야

-쓰고 읽다, 고종석, 알마출판사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에 치중해야만 인간의 행복도가 높아진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 오해를 이해하더라도 자연과학이 발달하지 못하면 인문학이 발달하지 못합니다. 공교육에서 자연과학을 배제시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퇴보를 가져오는 위험한 생각입니다. 다만 입시 수단화되어 배움의 즐거움이 사라진 것은 공교육의 큰 잘못입니다. 그래서 입시제도가 바뀌는 것이 배움의 즐거움을 회복하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수단화되었다고 배움 자체를 포기하거나 포기를 당연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공교육의 더 큰 문제입니다.
 
자연과학을 즐겁게 배우기 위한 방법은 많습니다. 융합교육, 프로젝트 학습을 대표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재 혁신학교에서 프로젝트 학습을 강조하는데 통합의 의미가 크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융합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 학습, 융합을 기반으로 한 미래 문제 해결 프로그램을 주장합니다.
융합교육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학문 영역을 동원하는 교육이며, 미래 문제 해결 프로그램은 주변의 문제를 학생들이 직접 해결하는 교육입니다. 공통점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배움이며 이 배움으로 문제를 해결한 후의 성취감이 행복으로 다가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해결해야 될 문제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어야 하고 학교의 환경(자연, 인문)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소프트웨어 교육도 접목되어야 되겠죠?
더욱 중요한 것은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교사의 적절한 조언과 안내, 전문가와의 연결에 의한 소양을 쌓는 활동을 등한 시 하면 안 됩니다.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대안학교의 졸업작품 수준이 낮은 것은 이 과정이 현저히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자연과학에 대한 배움이 없는 상태에서 직감에 의한 주먹구구식의 문제 해결의 결과입니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디자인, 완성도와 실용성이 떨어지는 이유도 같습니다.
대안교육의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차용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더불어 혁신학교를 주장하는 교육자들의 관점도 바뀌어야 합니다.
대안교육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관대하면서 영재교육과 특수교육에 대해서는 관심 밖으로 둡니다. 이 두 교육도 학생들의 행복한 성장을 위한 교육입니다.
다만 영재교육이 지나치게 선발의 객관화를 앞세워 사교육을 부추겼고 정말로 영재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폐단을 낳았습니다. 영재성이 있는 학생들이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영재성이 있는 학생들의 행복을 뺏는 현재의 선발 제도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에 의해 발생된 영재교육에 대한 오해로 영재교육을 사교육을 조장하는 교육,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혜택을 더 주는 교육으로 인지하여 영재성이 있는 학생들의 행복을 등한 시 하는 것은 학생의 행복을 최고로 생각하는 혁신학교와 맞지 않습니다.
특수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수학생들의 행복이 최우선이어야 합니다. 교육행정의 편리, 학교의 편리, 교사의 편리에 의해 특수학생의 행복이 변화는 것도 학생의 행복을 최고로 생각하는 혁신학교와 맞지 않습니다.
 
공교육의 혁신학교에서 대안학교로부터 빌릴 것은 두 가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째는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갈망하는 교사들의 강한 의지입니다.
이 강한 의지로 상위의 교육기관, 교육관료들과 대치하며 대안학교의 교육과정과 교장제도를 합리적으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공교육의 교사들은 마음속의 열망은 강하지만 비민주적인 학교문화, 관리자 중심의 학교문화를 바꾸려는 실천력은 많이 부족하여 변함없이 선한 관리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립니다. 선한 관리자에 의한 학교문화의 변화는 바람 앞의 촛불임을 미립났을 것인데 여전히 변화를 위한 행동보다 선한 관리자를 바라는 것은 절심함이 부족하다는 것이겠죠? 학교 공동체의 토론과 토의를 외면하고 선한 관리자의 결정만을 기다리는 학교문화를 지향하는 이들이 혁신학교를 주도하는 이유도 절심함이 부족한 탓이겠죠?
혁신학교를 주도하는 교사들은 포용성에 의한 자유연대의 학교문화를 주도해야 합니다.
교사마다 차별화된 전문성이 있습니다. 이 차별화된 전문성은 교사마다 가진 교육철학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과 발전에 대한 교육 방법의 차이에 의한 결과라고 봅니다.
생태교육 전문가, 프로젝트 학습 전문가, 진로교육 전문가, 상담 전문가, 영재교육 전문가, 특수교육 전문가, 소프트웨어 교육 전문가, 예체능 분야 전문가 등 차별화된 교사들이 있습니다. 혁신학교를 주도하는 교사들은 혁신학교 주도 전문가라고 해도 무방할까요?
혁신학교는 학교문화를 바꾸는 실천적 운동입니다. 그래서 혁신학교를 주도하는 교사는 학교문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공교육을 살리는 방향으로 교육공동체가 행복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전문가입니다.
학교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교사를 단절되고 독립된 존재로 존중하면서 선한 자유 의지에 의한 연대를 도모해야 합니다. 이 작업을 주도하는 차별화된 전문가들이 혁신학교를 주도하는 교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생태교육 전문가에게 생태교육의 방법으로, 프로젝트 학습 전문가에게 프로젝트 학습으로, 영재교육으로, 특수교육으로, 소프트웨어 교육 등에 의한 다양한 교육으로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연대를 이뤄내야 합니다.
어떤 방법의 틀을 씌워 강조하고 강요하는 학교가 아닌 교사의 자유와 평등, 존중과 포용을 가치로 한 자유연대가 혁신학교의 문화로 자리 매김 되어야 합니다.
자유연대의 강한 실천은 대안학교에서 빌려야 합니다. 
 
둘째는 행정업무의 대폭 삭제입니다.
대안학교에서 행정업무에 대한 협조를 잘해줘서 도교육청에서 좋아한다는 농담을 들었습니다. 공교육에서는 교사가 행정업무를 하는 것이 것이 당연 시 되어 있고, 업무 적정화라는 미명으로 교사의 행정업무를 고착화시키려는 의도에 대항하지 못하는 현실에 비하면 얼마나 꿈같은 이야기입니까?
행정업무의 삭제를 주장한 것은 학교에서 당연히 해야 될 행정업무를 삭제해 달라는 뜻이 아니라 교사가 하지 말아야 할 행정업무, 즉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관련되지 않은 업무를 교사에게서 삭제해 달라는 것입니다.
현재 혁신학교는 업무 전담 인력을 교무실에 배치하여 교사가 가진 행정업무를 대신하게 합니다. 이 방법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교사가 하지 말아야 될 업무를 삭제하여 행정실에 넘겨야 합니다. 당연히 행정실은 인력이 부족하다고 할 것입니다. 업무 전담 인력을 행정실에 배치하면 불만이 없을 것입니다. 혁신학교를 추진하면서 행정업무를 교사에게서 삭제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이 아쉽습니다.
혁신(행복) 학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도교육청에서 혁신학교의 취지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혁신학교와 관련된 부서에서는 행정업무를 감축한다고 하는데 다른 부서에서는 새로운 행정업무를 생산하여 교사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혁신(행복) 학교가 일반화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 또한 대안학교에서 차용해야 될 정책입니다.
 
혁신(행복) 학교가 대안학교를 지향한다면 대안학교의 교육과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안학교 교사들의 대안 교육에 대한 강한 의지와 실천, 민주주의 학교 문화를 위한 강한 실천, 교사가 하지 말아야 될 행정업무에 태업하는 저항정신을 지향해야 합니다.
 
혁신(행복) 학교는 교사에 의해 주도되는 학교의 변화입니다.
이번 대안학교 방문으로 교사가 변화지 않으면 학교는 변화지 않는다. 교사가 학교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또다시 확인하고 다짐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족을 더하면 대안학교나 혁신(행복) 학교를 주도하는 교사들을 폄하하긴 위한 의도는 절대 아닙니다. 처한 현실과 목적이 다른 학교인데 형식만을 차용하는 것을 경계하고, 대안학교의 정신을 이어가는 대안학교 교사들의 강한 의지와 실천력을 본받자는 의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