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겨울은 방학이 알려주는데 1월 중순에 겨울방학이 시작하는지라 12월의 첫날이 알려주는 겨울이 실감 나지 않는다. 올 들어 가장 낮은 기온, 편백나무 군락을 초록의 파도로 넘실거리게 하는 찬바람, 마스크 사이로 삐져나온 김으로 뿌옇게 흐려진 안경은 겨울이라 말하는데, 내 마음은 가을에 머물러 회색 사이에서 빨강과 노랑을 발견할 때면 올가을의 단풍은 참 진하다는 생각을 한다.
2021학년도 학교 교육과정 수립을 위한 워크숍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교육공동체를 향한 설문지다. 이밖에도 코로나 19가 가져온 상황에 따른 설문지, 각종 만족도 조사도 등의 설문지로 설문지가 만능이 되었다. 설문지가 교육을 하는 듯하다.
코로나 19 대응 단계에 따라 학교의 상황도 변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는 학교장이 판단해야 될 내용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판단하는 것이 두려워서 학부모의 설문지에 의지한다. 애초에 교육부가 시도했으니 따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코로나 19를 제대로 대처할 능력이 되면 대응 수칙이 허용하는 최대의 범위로 결정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전문가들에 의해 제시된 권고를 따르면 된다. 설문 결과가 비슷하게, 또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해달라고 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설문보다 학교장의 과단성이 사태를 더 진정시킨다.
설문답지 않은 설문을 분류해 보면, 법령과 문화로 보장된 학교의 권위를 포기하는 설문, 결과가 갈등을 유발하는 설문, 결과를 책임지지 못하는 설문, 의도성이 있는 설문, 당연해서 설문할 필요가 없는 설문이 있다.
학교공동체가 관심을 갖는 부분에 우리의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서 설문을 한다. 그런데 그런 설문이 우리 전문성을 침해하거나 방해로 작용한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 설문을 예사로 하면 안 된다.
보건 업무를 갖고 교육청 공무원 노조, 보건교사 노조, 전교조 경남지부가 공문을 보냈다. 교육청 공무원 노조와 두 노조가 대결하는 양상이다. 학교의 업무분장은 학교장의 권한이다. 물론 교직원과 상호 간에 소통하여 민주적인 방식으로 분장되어야 하고, 학교 시설 관리와 방과 후 학교 강사를 비롯한 각종 강사들의 수당 지급 관련 행정업무는 행정실의 영역이라고 여러 번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옮기는 학교마다 사정이 달라서 담당자의 직급과 직위가 달랐다. 지금도 우리 학교는 방과 후 담당 교사가 강사 수당 지급 행정업무를 하고 있고 교무행정원도 돕는다. 현재 우리 학교의 사정에 맞춘 선택이고 다른 학교는 교사가 하고 있으나 우리 학교에서는 행정실에서 하는 업무도 있다.
학교의 사정에 따라 업무량과 해결 형태 등이 다르다. 그리고 이를 민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워크숍을 하고 인사위원회의 자문도 존중한다.
현재까지 업무 적정화가 업무 분장에 목적을 뒀다면 이제는 업무 해결에 초점을 둬야 한다. 진보와 예기치 못한 사회 변화로 학교의 업무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이럴 때마다 노조가 이래라저래라 할 것인가? 어떤 직급이나 직위가 담당하든 함께 그 업무를 해결하려는 학교 분위기만 형성되면 그 업무가 주는 부담감은 줄어든다. 그리고 학교 업무 대부분은 구성원들의 공유와 협조가 없으면 제대로 완료되지 않는다. 오히려 동료들에게 부담감을 덜 지우려고 혼자 하다 보면 그 업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로 인해 실컷 일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그 업무가 불필요하다는 저항에 부딪힌다.
학교의 업무분장은 학교장의 권한이다. 교육감과 노조의 협약으로 권고될 수 있지만 그것을 수용 여부는 학교의 사정과 학교장의 결정이다. 계속 증가하는 업무의 담당자 지정을 교섭하여 학교 현장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두루뭉술한 교섭 결과가 최선의 방법인지는 숙고해야 한다.
교감선생님이 접수해 주시고, 전 교직원 공람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노조가 보낸 공문 말미의 행정사항이다. 공문 접수는 교무행정원이, 공람은 업무 담당자가 하는 것이 상식이다. 교무행정원이 접수하면서 공람시키는 경우도 있다. 교무행정원이 공문을 접수하고 내가 노조와 단체 담당이라 전교직원에게 공람했다. 학교 구성원의 역할과 업무 절차를 제대로 파악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공문 접수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노조의 역할인지! 그 노조의 공공문서일 뿐인데 마치 법적으로 강제력을 발휘하는 문서인 것처럼 명령하고 강제하려는 문구가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권위주의를 닮았다. 지난날의 내가 참 허무하다.
학교 바닥공사 진척사항을 행정실장이 수시로 말해 주는데 학교 공사라는 것이 우리가 보는 것만이 다가 아닌 행정실의 정성으로 가득하다. 듣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직접 일을 추진하는 실장은 오죽할까만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나를 뒤돌아보게 한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교감이라고 꼬박꼬박 챙겨주는 마음씨는 언젠가는 꼭 보답해야 되겠다는 의무감을 갖게 한다. 참 대단한 분이다.
고등어구이에 반쯤 남은 매향주로 알딸딸한 채로 자고 싶다.
'교감 일기(2018~)'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년 12월 3일 (0) | 2020.12.03 |
---|---|
2020년 12월 2일 (0) | 2020.12.02 |
2020년 11월 30일 (0) | 2020.11.30 |
2020년 11월 27일 (0) | 2020.11.27 |
2020년 11월 26일 (0) | 2020.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