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야 미안하다.
구불구불한 도랑이었다.
지게를 겨우지고 위태롭게 걷던 도랑 둑길이었다.
그 둑길이 끝나는 즈음에 조그마한 밭이 있었다.
칡덩굴이 밭을 포위한 채 호시탐탐 침범의 기회를 노렸다.
닭알로 돼지 새끼를 사고 돼지 새끼로 송아지를 사서 황소로 내다 팔았다.
송아지를 사고 남은 돈으로 골짜기 밭 주변의 산을 조금씩 사서 감나무를 심었다.
자식이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입학할 때면 감나무도 덩달아 늘어났다.
감나무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넓이만큼 들어차야 자식이 그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 도랑이 시멘트로 곧게 발라졌다.
도랑의 안개는 그때처럼 피어올라 벼의 목덜미를 지그시 눌렀다.
아버지가 지게도 없이, 리어카도, 경운기도, 1톤 트럭도 없이 꺾인 허리에 손을 번갈아대며 숙였다 폈다를 되풀이며 힘겹게 걸어가셨다.
밭을 포위한 채 호시탐탐 침범의 기회를 노렸던 칡덩굴이 가장자리의 감나무를 타오르고 있었다.
찬찬히 감나무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시고는 칡덩굴에 칭칭 감긴 감나무에 다가서셨다.
불볕에 딱딱하게 굳어 골이 패인 목덜미 살갗 같은 감나무 줄기를 살포시 쓰다듬어며 경건하게 말씀하셨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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