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일기(2018~)

2024년 9월 19일

멋지다! 김샘! 2024. 9. 19. 14:25

  평소에 세 명만 살다가 아들 둘이 추석을 맞아 집에 오니 집안이 가득 찼다. 손자가 반년만에 집에 와서 그런지 어머니는 화색이 돌았다. 수시로 큰 아들이 있는 작은 방과 작은 아들이 점령한 거실을 오가며 얼굴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살피셨다. 어제오후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두 아들을  마중하러 보행 보조기를 끌며 현관까지 와서는 아쉬움이 잔뜩 묻은 손을 흔드셨다. 두 손자를 향한 기다림만큼 건강이 연장되기를 기원한다.

  추석 차례상을 아주 간소하게 하자고 그렇게나 이야기했건만 차례상이 그득했다. 아내에게 고맙고 고생했다면서 언제까지 그럴 순 없다고 했다. 갑자기 명절 차례상을 아예 없애기에는 마음이 너무나 찜찜하고, 고집 센 어머니를 설득할 재주도 없거니와 그렇게 해서 닥칠 터무니없는 노기를 감당해야 하는 불편함보다는 어머니가 가족들 생일이면 비는 간소한 고사상-밥과 국, 생선 한 마리, 나물, 과일 하나-정도로 하는 게 나을 듯했다. 평소에 별안간 어머니도 빈말인지 참말인지 알 수 없지만-나는 빈말이라고 확신한다.-명절 차례상은 안 해도 된다고 했고.
  아내에게 명절과 아버지 제사상에 올릴 간소한 목록을 하나 만들 테니 진짜 그것만 하자고 했다.

  추석날 오전에 큰집에 들러서 꽤 오래전부터 작은집이라는 이유와 얼굴도 모르는 집안 어른들의 터무니없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참석하지 않는 집안 벌초와 시사 얘기를 일부러 꺼냈다. 거동이 안 되는 형님을 대신하여 참석하곤 했던 조카가 노인들만 참석하는 실상과 윗대 조상들의 묘를 벌초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나는 집안에서 관리하는 한참 윗대 조상들의 묘는 자연으로 돌려주든지 벌초대행업체에 맡기든지 하고, 시사 지내기도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우리 세대에서 정리해 줘야 자식 세대들이 집안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욕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밀림이 된 위험한 숲을 헤치고 벌초하는 건, 시골에서 자란 내게도 엄청난 부담인데, 아들 세대에겐 오지체험보다 더한 고통이다. 그런 고통스러운 체험이 삶을 윤택하게 하지도 않고. 나는 조상을 기리는 행위는 산 사람들을 위한 기복 의식이어서 현시대 사람들의 의식대로 바뀌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 의식을 강요하여 통일할 필요도 없고.

  추석 전의 일요일아침 일찍 처가 산소에 아내와 둘이 성묘를 다녀온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버지 산소 성묘는 벌초하고 했었다. 기후 위기로 인한 폭염의 추석에 성묘를 한다는 건, 나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큰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렀는데 다행히 불편한 자리 하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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